어르신들 소일거리서 연매출 5억 기업 우뚝 선 ‘할머니 도시락’

2016년 4월 23일   School Stroy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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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요리사들 화학 조미료 안쓰는 ‘투박한 손맛’이 성공 비결
단골 많아 하루 배달량 기본이 300개…노인 일자리 창출 ‘모델’

(청주=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큼직하게 썬 왕돈까스, 툭툭 잘라 버무린 고추된장 무침, 울퉁불퉁 못생긴 계란 범벅.

환갑을 훌쩍 할머니 셰프 15명이 손수 만든 ‘투박한’ 점심 도시락 메뉴다.

 

지난 2006년 청주 우암시니어클럽이 노인들의 소일거리로 시작해 지난해에 4억7천만원의 매출을 올리며 어엿헌 중견 기업으로 성장한 ‘㈜할머니 손맛’ 도시락은 거칠고 푸짐하다. 양이 적고 아기자기하게 모양에만 신경 쓰는 여 도시락과는 한눈에도 차이가 난다.

안달순(70·여) 조리장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꾸준한 성장을 일군 할머니 표 도시락의 인기 비결을 ‘꾸미지 않은 투박한 손맛’으로 꼽았다.

중식당을 운영한 경력이 있는 안 조리장은 지난 2007년 말부터 8년 동안 할머니 요리사들을 진두지휘해 왔다.

그는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고 재래시장에서 산 지역 농산물로 음식을 만들어서 오랫동안 질리지 않는 맛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연 매출이 1천만원이었던 초창기에는 직접 농사지은 배추로 담근 김치를 도시락에 내기도 했다고 한다.

15명의 할머니 셰프들은 대부분 5년 이상 손발을 맞춰왔다. 덕분에 깊고 담백한 음식 맛을 기복 없이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넉넉한 인심에 재료를 아끼지 않으니 도시락은 늘 푸짐하지만 가격은 5천원대로 착하다. 메뉴다 다양해 주머니 사정은 넉넉지 않은데 배는 늘 고픈 청춘들에게는 소중한 점심 해결책이다.

손자 손녀에게 내주듯 할머니 정성이 듬뿍 담긴 도시락은 곧 객지에 나와 ‘집밥’이 그리운 젊은 여성 직장인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점심 시간에도 자리를 뜨지 못하는 병원과 약국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단골이 생겨나면서 고정 주문이 늘었다. 주고객층이 전파력이 강한 젊은층이었던 터라 금새 ‘맛집’으로 소문났다.

오전 7시 30분부터 만드는 하루 150여개의 고정 주문 도시락 대부분은 병원·약국·대학에 배달된다.

투박하지만 건강한 도시락을 맛 본 고객은 꼭 다시 찾곤 한다. 그래서 할머니 도시락은 6개월 이상 고정 주문하는 ‘단골’들이 많다.

덕분에 하루 평균 300개씩 도시락을 배달하고, 봄이나 가을 행락철에는 무려 2천개까지 주문이 쏟아지기도 한다.

오는 6월 충남 태안에서 열리는 시니어클럽 행사용 도시락 1천개 주문이 벌써 들어오는 등 주문이 꾸준히 늘고 있다.

할머니들은 이런 성과에 자신감을 얻어 우암시니어클럽에서 독립해 지난 19일 법인인 ‘할머니 손맛’을 설립, 10년만에 기업의 틀을 갖췄다.

한달 벌이는 50∼60만원 선. 하루 5시간 근무를 고려하면 꽤 짭짤한 수익이다.

도시락 배달만 전문으로 했던 것을 사업장이 있는 흥덕구 강내면 지역 노인들을 위해 저렴하게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 운영도 구상하고 있다.

할머니손맛에서 5년째 일하고 있는 김을순(70) 셰프는 “적지 않은 나이에 일터에서 꾸준하게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어서 즐겁다”며 웃었다.

할머니들이 소일거리로 시작한 도시락 사업이 번성하면서 노인 일자리 창출의 새로운 모델로 떠오른 것이다.

할머니 손맛 박순희 부장은 “이윤 창출보다는 지역에서 나는 질 좋은 농산물을 사용하고 음식 솜씨 좋은 할머니들이 정성들여 손맛을 내니 맛있는 것이 당연한 거 아니냐”며 “규모가 커지면서 어르신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보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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