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튜브 꽂고… ‘옥시 재판’ 지켜본 13세 피해 소년

2016년 4월 26일   정 용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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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군 [연합뉴스 자료사진]

법정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성준이의 거친 숨소리만

살균제 제조사 및 국가상대 손해배상 소송 재판

(서울=연합뉴스) 방현덕 기자 = “쓰읍-후우, 쓰읍-후우”

방청객들로 가득 찬 서울중앙지법 558호. 방청석에 앉은 소년의 거친 숨소리가 법정에 울려 퍼지며 귀를 잡아끌었다. 머리 위로 야구 모자를 비뚤게 얹은 소년은 코에 꽂은 산소 튜브만 아니면 보통의 13세와 다를 바 없었다.

소년의 산소 튜브는 두 바퀴 손수레에 실린 기다란 산소통과 연결됐다. 어머니는 소년이 어딜 가든 산소통 손수레를 끌고 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벌써 12년째다. 타인의 불편한 시선은 모자에게 일상이 됐다. 소년을 손가락질하며 ‘너 말 안 들으면 쟤처럼 된다’고 자기 자식을 어르는 어른까지 있었다.

경기도 용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임성준군은 14개월 때부터 투병 생활을 했다. 병실이 건조하다며 열심히 튼 살균제를 탄 가습기는 병을 키웠다. 면역이 떨어져 감기라도 한 번 걸리면 중환자실에 가야 한다. 평생 그 흔한 놀이터 한 번 못 가봤다.

“성준이가 그러더라고요. 자기 소원은 산소(호흡기)를 떼고 마음 편하게 친구들이랑 뛰어놀고 싶다고. 저도 성준이가 다른 애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게 제일 큰 소원이에요.”(어머니)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정인숙 부장판사)는 25일 성준이 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의 살균제 제조사 및 국가상대 손배해상 청구 소송 속행공판을 열고 양측 의견을 심리했다.

피해자들은 “현재 검찰 수사 과정에서 살균제 제조사들이 낸 몇몇 연구결과가 일부 조작됐다는 점이 드러나 문제 되고 있다”며 이를 반영해 재판해달라고 요구했다. 재판부는 “수사 결과를 보고자 다음 재판을 2∼3개월 후에 열겠다”고 했다.

성준이 등의 소송은 2012년 제기됐다. 그간 9번 열린 재판에서 양측은 평행선을 달렸다. 지난해 11월 법원이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지만 일부 원고가 거부했다. 이날 재판 중 드러난 조정 문서 중엔 ‘5천400만원, 8천600만원’ 등의 액수가 적혀 있었다.

 

조정을 거부한 원고들은 최근 검찰 수사 본격화에 맞춰 가습기 제조사들이 거액을 앞세워 사죄 의사를 밝힌 데 분노했다. 그간 힘없는 피해자들에게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니 검찰과 언론이 나서자 사과하는 시늉을 한다는 것이다.

현재 검찰 수사는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옥시레킷벤키저를 겨냥하고 있다. 26일엔 문제의 살균제가 출시된 2001년 당시 대표이사 신현우(68)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한다.

성준이 어머니는 “그렇다고 제조사들이 자기들 잘못을 인정하고 바뀐 게 아닌 것 같다”며 “2년 전에도 옥시 관계자들에게 성준이를 데리고 가 보여주며 얘기했지만 쳐다도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저는 그런 분들이 소환돼서 오든 말든 관심 없어요…자기들 죗값 다 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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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gh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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