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남매, 고사리 손으로 직접 아버지 신고할 수밖에 없던 사연

2016년 5월 13일   정 용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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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


알코올중독 아버지·중학생 딸·초등생 아들 병원·보호시설로 흩어져
경찰, 남매가 함께 보낼 시설·딸 수술비…사회적 관심 호소

(광주=연합뉴스) 정회성 기자 = 사회보호시설에 들어가고 싶다는 10대 남매의 전화가 지난 3월 22일 112상황실에 걸려왔다.

중학교 2학년 A(15)양, 초등학교 6학년 B(12)군 남매는 알코올중독과 당뇨합병증으로 아픈 아버지(43)를 치료해달라는 말도 남겼다.

욕설을 자주 하고 온갖 집안일을 시키는 아버지지만, 때린 적은 없으니 벌을 주지 말라고 남매는 호소했다.

또 건강해진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다며 병원에서 보내는 치료 기간에만 시설에서 지내게 해달라고 이야기했다.

경찰은 지자체와 함께 사회 각계의 힘을 모으는 회의를 열었다. 중독치료센터, 청소년복지센터,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9개 기관 관계자가 참석했다.

◇ A양의 점프볼

광주 남구에 사는 A양의 오른쪽 발에는 엄지발가락 첫 마디에서 발목까지 발등을 덮는 피부조직 덩어리가 달려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발목이 깊게 파이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유증이다.

엉덩이 살을 떼어내 성처 부위에 급하게 붙이는 치료를 받았지만, 어른들끼리 합의가 안 돼 재수술을 못 받았다. 4년 만에 받아낸 합의금 1천만원은 아버지가 써버렸다.

항상 부어있는 A양의 발등에는 종종 통증이 찾아온다. 성장판도 다쳐 키가 다 자라지 못했다.

A양은 휴일마다 친구들과 농구를 하는 게 가장 큰 재미다. 학교에서 인기 많은 A양은 반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A양이 지금의 발목 상태로 농구를 계속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한다.

A양은 엄마 없는 집에서 아버지와 남동생을 챙기는 생활을 오래 했다.

술 마시고 소리 지르고 화내는 게 아버지의 일상이다. 수시로 쏟아지는 욕설은 A양의 여린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

자신마저 없으면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진짜 고아가 된다며 모든 걸 훌훌 털고 집을 나갈 수도 없다고 A양은 토로했다.

A양은 부모와 함께 거리에 나선 또래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난 왜 이렇게 됐을까’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며 예쁘게 화장도 해보고, 맛있는 것도 사 먹는 일상을 누려보는 것이 A양의 꿈이다.

“늘 엄마가 그리워요. 보고 싶어요.”

A양은 학대전담 경찰관에게 꼭꼭 숨겨뒀던 이야기를 털어놨다.

◇ 항상 술에 취해있는 아버지

A양 남매의 부모는 10여년 전 이혼했다. 어머니는 연락조차 닿지 않는다.

매일 술을 마시는 A양의 아버지는 당뇨합병증이 심해져 다리 근육이 말라버렸다.

가족은 3년 전부터 매달 지급되는 기초수급비 110만 원가량으로 생활한다.

구청이 도시락과 방문 가사도우미를 보내주겠다고 했지만, 아버지가 거절했다. 남매는 학교급식과 식당 밥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아버지의 방에는 플라스틱 소주병과 컵라면, 과자가 흩어져있다. 아이들이 번갈아 비우는 소변 통도 놓여있다.

아버지는 알코올중독 입원치료를 받았던 2012년, 남매를 여섯 달 보호시설에 맡긴 적 있다. 그때를 제외하면 남매는 아버지와 떨어져 보낸 적이 없다.

남매는 시설에서 지내고 있을 테니 아픈 몸을 치료받으라고 설득했지만, 아버지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우리를 그냥 놔둬라. 동네 창피하니 다시는 오지 마라.”

아버지는 남매의 연락을 받고 집에 찾아온 경찰과 구청 공무원에게 역정을 냈다.

◇ 가족이 다시 만나기까지

남매는 지난달 25일부터 서로 다른 그룹홈 시설에서 떨어져 지낸다.

4년 전 생활했던 시설에 함께 들어가고 싶었지만, 자리가 부족해서 A양은 다른 시설을 찾아야 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시설에 들어갔던 날 치료를 시작했다. 금단현상을 이기지 못하고 소란을 피워 병원을 한 차례 옮겨야 했다.

A양 가족은 어린이날을 이틀 앞둔 지난 3일 아버지가 입원한 전남 화순의 병원에서 오랜 시간 잊고지낸 서로의 밝은 미소와 마주했다.

눈물을 글썽이던 아버지는 ‘고맙다’,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1년이 지나면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을 나올 예정이다. 경찰은 아버지가 정상적인 삶을 찾도록 일자리를 소개할 계획이다.

잠시만 시설에 머물 예정이었던 아이들은 성년이 될 때까지 돌봄을 받기로 했다. 경찰과 구청은 뿔뿔이 흩어진 가족의 처지가 딱해 두 남매라도 시설 한 곳으로 모으는 방법을 찾고 있다.

광주 남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송정희 경위는 “A양을 남동생이 지내는 시설로 보내주고 싶은데 그룹홈의 정원 1명을 늘리고 허가받는 일이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송 경위는 “발목 재수술비용 1천만원까지 구청과 경찰이 해줄 수 없어 미안하다”며 “많은 분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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