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살인’…정신분열증이 ‘여성 피해망상’ 불렀나

2016년 5월 22일   School Stroy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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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열증 환자 4년새 10%↑…”빠르고 지속적 치료 중요”
연관성 상세 분석해야…”정신장애인 범죄율, 정상인 10분의 1수준”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김병규 기자 = 최근 서울 강남역 인근 주점에서 발생한 ‘화장실 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피의자가 앓고 있던 정신분열증(조현병)이 범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피의자의 살해 동기로 꼽히는 ‘여성 혐오증’이 정신분열증 병력과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피의자 김모(34)씨는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증에 사로잡혀 있었던데다 지난 1월 이후에는 복용하던 치료약도 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분열증 환자에게는 신속하고 꾸준한 치료가 중요한 만큼 그사이 병세가 악화됐을 가능성이 있다. 피의자 김씨는 2008년부터 4차례 정신분열증으로 입원했으며 올 1월 초 퇴원했다.

다만 통계적으로 보면 정신분열증 환자의 폭력성이 일반인에 비해 높지 않다는 분석도 있는 만큼 정신분열증 자체를 범죄와 연결하는 데는 신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이번 범행이 정신분열증 병력과 관련이 있는지는 추후 정밀한 분석이 필요할 전망이다.

◇ 정신분열증 4년새 10%↑…망상과 환각이 대표 증상

김 씨가 앓은 것으로 나타난 정신분열증의 공식 명칭은 ‘조현병(調絃病)’이다. 정부와 의료계는 정신분열증이라는 표현이 사회적 이질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2011년부터 조현병으로 부르고 있다.

‘조현’이란 현악기의 줄을 고른다는 뜻인데, 이 병의 환자가 마치 현악기가 조율되지 못했을 때처럼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이는 데서 비롯됐다.

이 병 환자들의 대표적인 증상은 사실이 아닌 것을 확신을 가지고 믿는 ‘망상’,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경험하는 ‘환각’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언어를 쓰거나, 정서적으로 과도하게 둔감한 증상 등으로 사회적 활동에 장애를 일으킨다면 이 역시 조현병에 해당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진료비 지급자료에 따르면 조현병(질병코드 F20) 진료인원은 2010년 9만4천명에서 작년 10만4천명으로 10.6% 증가했다. 여기에는 발생 자체가 늘었다기보다는 병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치료를 받는 환자가 늘어난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유병률은 전 세계적으로 인구의 1% 정도로 일정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한국에는 50만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정석 일산병원(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은 조기에 치료를 받으면 별다른 장애 없이 사회로 복귀가 가능한 질병이지만, 치료를 중단해서 재발한 경우는 치료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정신분열증 환자 공격성 높다?…정상인 범죄율의 10분의 1수준

경찰청은 사건 직후인 지난 19일 ‘이상 범죄’ 피의자의 절반가량이 정신질환을 알았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2006년 이후 10년간 발생한 묻지마 범죄, 분노·충동 조절 실패 등 이상 범죄 46건을 살펴봤더니 25건(54.3%)의 가해자에게서 정신질환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이상 범죄만을 대상으로 한 통계라서 실제 정신질환 환자의 공격성을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대검찰청이 내놓은 2011년 범죄분석 보고서를 보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은 정상인 범죄율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복지부 역시 지난 2월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진실’ 자료를 통해 “정신 질환 중 공격성과 잠재적 범죄를 일반적인 증상으로 하는 정신 질환은 ‘반사회적 인격장애’ 한가지뿐”이라며 “조현병 환자들은 범죄와 폭력의 위험성이 매우 낮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자료는 “일부 충동성이 조절되지 않으며 자해·타해 위험성을 보일 경우가 있지만 이마저도 타해 위험성이 자해 위험성의 100분의 1 수준”이라고도 강조했다.

단국대 심리학과의 임명호(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교수 역시 “정신건강의학회는 조현병이 살인의 위험률을 높인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조현병은 극히 소수의 타해 관련 환자를 제외하면 통계적으로는 살인과 관련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 여성에 대한 망상이 범죄에 작용…”약자에 대한 공격성 강화 추세 경계해야”

피의자 김씨의 범행에 정신분열증 병력이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추후 상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김씨는 의료진으로부터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는 복약지도를 받기는 했지만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았다. 3월 가출 뒤 노숙 생활을 해 복약과 관련한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범행 당시 질환의 증상이 심해졌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신분열증이 범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범행 과정에서 치밀함이 엿보이는 것은 정신분열증의 전형적인 특징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여러명의 남성이 지나간 뒤 여성을 공격한 것 역시 정신분열증 증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임명호 교수는 “김씨가 여성들이 자신에게 극심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임 교수는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서도 가까이 지낸 여성들의 관계에서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직접적으로 관계했던 여성들에게서 받은 상처가 분노로 바뀌고 그 대상이 여성 전반으로 확대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어 “다만 여러명의 남성이 지나간 이후에 여성을 공격한 것은 정신분열증의 증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임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정신분열증이 미친 영향과 관계없이 앞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성이 증가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자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해 자살률이 줄고 있지만, 외국연구에서는 자살이 줄면 타살이 상보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사회 전반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자살과 타살 모두가 줄어들기 어렵다는 뜻”이라며 “자살뿐만 아니라 묻지마 살인, 학교폭력 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b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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