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가라 외쳤지만”… 유기견 120마리 화재로 숨져

2016년 5월 27일

“도망가라 도망가라 외쳤지만”…유기견 120마리 화재로 숨져(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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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현장 (천안=연합뉴스) 김용윤 기자 = 26일 오전 천안 서북구 성환읍 유기견 보호소 ‘반송원’이 전날 발생한 화재로 아수라장이 돼 있다. 2016.5.26

 
10년 넘게 보호소 운영 노부부 “사체처리 도움 청할 데 없어” 발 동동

(천안=연합뉴스) 김용윤 김소연 기자 = 충남 천안의 한 유기견 보호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120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불에 타 죽었다.

유기동물들을 10년 넘게 돌봐온 노부부는 도움을 청할 곳이 없어 사체 처리조차 못 하고 있다.

26일 충남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전날 낮 12시 50분께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유기동물 보호소 ‘반송원’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허경섭(70) 원장은 아들의 이사를 도와주러 자리를 비웠다. 허 원장의 부인만 보호소에 남아있던 날이었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허 원장의 부인이 전기 스위치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 이상해 밖으로 나가보니 보호소 컨테이너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

불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유기견 철창이 있는 비닐하우스까지 번졌다.

비닐하우스 안에는 유기견 130마리와 유기 고양이 20마리가 있었다.

허 원장의 부인은 한 마리라도 살리려고 불이 난 현장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철창을 열어 강아지와 고양이들에게 “도망가라”고 소리쳤다.

강아지들은 철창 안에서 도망칠 줄 몰랐고. 그대로 불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불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소방대원에 의해 2시간여만에 꺼졌지만, 유기동물 150마리 가운데 120마리가 연기에 질식하거나 타 죽고 말았다.

경찰 관계자는 “컨테이너에 방화 흔적은 없었다”며 “전기 누전으로 인한 화재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이 난 지 하루가 지난 26일 오전 반송원은 아수라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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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현장 (천안=연합뉴스) 김용윤 기자 = 26일 오전 천안 서북구 성환읍 유기견 보호소 ‘반송원’이 전날 발생한 화재로 아수라장이 돼 있다. 2016.5.26

 
화염에 비닐하우스 철골이 다 녹아내렸고 강아지와 고양이 사체가 여기저기 널려 있어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다.

살아남은 30여마리의 개와 고양이들은 아직 화재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연신 큰 소리로 짖어댔다.

자식처럼 아꼈던 120마리가 하루아침에 죽어버려 허 원장 부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

슬픔에 빠질 새도 없이 당장 무너진 하우스를 복구하고, 120여마리의 사체를 처리해야 한다.

건강이 좋지 않은 노부부가 이 모든 것을 다 해내기는 역부족이다.

낮 기온이 크게 올라간데다 땅을 임대해 쓰고 있는 터라 사체 처리가 급선무지만 도움을 청할 곳도 마땅치 않다.

허 원장은 “읍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예산도 없고, 개인이 운영하는 것이어서 도와줄 만한 근거가 없다고 하더라”며 “슬픈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부부 둘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불이 나서 다친 강아지와 고양이의 치료도 시급하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부상이 더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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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현장 (천안=연합뉴스) 김용윤 기자 = 26일 오전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유기견 보호소 ‘반송원’이 전날 발생한 화재로 아수라장이 돼 있다. 불에 탄 철창 안에 살아남은 강아지들이 서 있다. 2016.5.26

 
허 원장 부부와 유기 동물의 인연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4년 당시 다음 카페 ‘반송원’을 운영하던 카페지기가 식용으로 팔려가던 유기견 20마리를 구조했다. 그러나 대형견 20마리를 보호하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 사정을 알게된 허 원장이 비어있던 개농장 시설 토지를 임대해 유기견들을 맡아 돌보면서 반송원이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당시 카페지기가 1년 뒤 외국으로 나가게 되면서 다음 카페 반송원도 허 원장이 이어받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허 원장 부부는 이때부터 10년 넘게 유기 동물들을 자식처럼 돌보고 있다.

허 원장은 네차례 허리 수술을 해 30분 서 있기도 힘들고 부인 역시 건강이 좋지 않는 등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유기 동물에게는 고급 사료를 먹이고 최상의 치료를 해 주려고 노력한다.

이들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2011년엔 네티즌들이 모금 운동을 했고, 후원금으로 충남 천안으로 이사와 견사를 짓고 다시 반송원을 꾸렸다.

최근까지도 인터넷 카페를 통해 후원이 종종 이어졌으나 연금으로 생활하는 노부부가 150여마리의 동물을 돌보기엔 부족해 허 원장은 현재 5천여만원의 빚을 떠안고 있다.

허 원장은 “사체 처리와 남은 아이들의 치료까지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성환읍 관계자는 “조만간 피해 상황을 점검해보고 사체 처리 등 지원 가능한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반송원 유기동물들에 도움을 주고 싶다면 다음카페(http://cafe.daum.net/wourirungi)에 들어가거나 계좌(우체국 허경섭 10342402036987)로 후원하면 된다.

yykim@yna.co.kr, so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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