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과학수사> ①’빼도박도 못하는 증거’ 지문

2016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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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주민등록 정보 활용…인권침해 논란 있지만 신속수사에 큰 기여
60여년간 눈부신 기술 발달…선진국도 인정한 최고 수준

<※ 편집자주 : 시대가 변화하면서 범죄 양상도 날로 지능화하는 양상입니다. 인권이 중시되면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증거의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간 계속 발전해온 다양한 과학수사 기법은 이같은 범죄환경에 대응하는 수사기관의 중요한 무기입니다. 한국의 과학수사 기법과 그 발전상을 약 15회에 걸쳐 매주 토요일 소개합니다.>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이거 어떻게든 꼭 잡고 싶은데….’

서울 구로경찰서 형사과에는 올 3월까지 꽤 신경쓰이는 ‘숙제’가 있었다. 5년여 전인 2010년 11월14일 구로구 한 편의점에서 발생한 특수강도미수 사건이었다.

사건 자체는 단순했다. 그날 오후 9시40분께, 흉기를 든 한 남성이 편의점으로 들어와 종업원을 위협하고 금품을 빼앗으려다 실패해 달아났다.

평범한 편의점 강도 사건이지만, 구로서 형사들이 범인 검거 의지를 다진 것은 단지 해결되지 않은 미제사건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편의점 폐쇄회로(CC)TV 동영상에 잡힌 피해자의 겁에 질린 모습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아서였다.

피해자는 당시 불과 20세였던 여종업원이었다. 파일을 내려받은 것이 아니라 PC 화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해서인지 화질이 나빠 표정은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영상을 본 형사들은 범행 당시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감을 짐작하고도 남았다.

범인은 모자를 눌러쓴 채 종업원 혼자 있는 편의점으로 들어왔다. 음료수를 사는 척 계산대 위에 올리고 담배를 주문했다. 종업원이 뒤편 진열대에서 담배를 꺼내 돌아서는 순간 흉기를 들이댔다. 다른 손님이 들어오려 하자 흉기를 휘둘러 쫓아버렸다. 편의점 안에는 종업원과 범인 둘밖에 없었다.

범인은 종업원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머리채를 잡고 머리를 계속 눌러댔다. 그러다 한쪽 구석에 종업원을 팽개치고는 계산대 금고를 열려 했다. 조작법을 모르는지 계속 실패하던 범인은 결국 돈을 꺼내지 못했다. 그는 겁에 질려 구석에 웅크린 종업원을 두고 황급히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처음에는 범인 검거가 어렵지 않아 보였다.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인 지문이 음료수병에서 채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등록 국민 지문 데이터베이스(DB)에서는 일치하는 지문이 나오지 않았다. 주민등록을 하지 않은 한국인이 아니면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이라는 뜻이었다.

결정적 증거인 지문을 활용할 수 없자 경찰은 편의점 주변 CCTV를 뒤졌다. 지금은 사설 CCTV까지 수두룩한 곳이지만, 당시에는 CCTV가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CCTV 영상을 돌려 보며 추적했으나 범인은 어느 순간엔가 종적을 감췄다. 인상착의가 비슷한 이들에 대한 탐문도 소득이 없었다.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시간이 흐르는 사이 미제로 남은 이 사건은 구로서 강력 6팀이 넘겨받았다. 밀려드는 다른 사건들을 처리하면서도 이 사건을 잊지 않던 그들에게 올 3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유일한 증거였던 음료수병 지문의 주인이 확인됐다는 소식이었다.

정부는 국내 입국하는 17세 이상 모든 외국인의 지문과 얼굴 정보를 등록하는 제도를 2012년부터 시행했다. 2014년에는 외국인 지문·사진정보가 전산망으로 경찰청과 연결됐다. 강력 6팀은 경찰청에 음료수병 지문 재검색을 의뢰했다. 국내 체류하는 중국동포 장모(37)씨의 지문이라는 회신이 왔다. 범행 이후 중국을 여러 차례 드나든 기록이 있었고, 그 과정에서 지문과 얼굴이 등록된 듯했다.

수사는 5년여 만에 급물살을 탔다. 장씨의 체포영장이 발부됐고, 소재 추적 결과 그가 경기도의 한 공사현장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3월24일, 강력 6팀 전원이 검거에 투입됐다. 일터에서 형사들을 마주친 장씨는 담담하게 체포영장 집행에 응했다. “잘못했습니다. 저도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였다.

구속된 장씨에게는 탈북민 출신 아내와 어린 딸이 있었다. 형사들은 탈북민 지원단체에 요청해 이들 모녀가 생계 도움을 받을 방법을 마련해 줬다.

◇ 가장 고전적인, 그러나 가장 확실한 증거…법·제도가 뒷받침

지문 감식은 가장 널리 알려진 과학수사 기법이다. 지문은 사람마다 다르고, 한 사람의 지문도 손가락마다 다르다. 평생 형태가 변하지도 않는다.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지문 일치 여부는 DNA와 더불어 가장 확실한 근거다.

한국의 지문 감식 역사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내부무 치안국에 ‘감식과 지문계’가 설치된 1948년 11월 시작됐다. 일제 강점기 일본 경찰도 범죄자 지문을 축적했지만, 경찰은 지문계 설치를 공식적인 시초로 보고 있다.

초기에는 다른 방법으로 피의자 신병이 확보됐을 때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과 실제 피의자 지문을 1대 1로 대조, 동일인 여부와 범죄 관련성을 확인했다.

1963년 각 시·도 경찰국 수사과에 ‘감식계’가 신설되고서는 ‘1대다(多)’식 지문 검색이 가능해졌다. 종전에 축적된 범죄자 지문 자료를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현장 지문과 대조, 같은 지문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1964년 제도화한 이 방식을 ‘일지지문제도’라 하는데, 한국 과학수사 역사에 중요한 계기로 거론된다.

구로경찰서의 사건 해결 과정에서 보듯, 한국에서 지문 감식 기법의 빠른 발전은 법·제도의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했다. 입국 외국인 지문을 등록하게 한 제도 덕분에 종전에 활용되지 못한 지문 증거가 비로소 빛을 발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8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때 좌우 엄지손가락 지문을 날인하게 하는 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1975년에는 열 손가락 지문(십지지문)을 등록하게 하는 방식으로 제도가 바뀌었다. 국가가 사실상 전 국민의 지문 정보를 보유할 법적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경찰은 이렇게 축적된 지문 정보를 용의자 특정이나 변사자, 행려병자 등의 신원 확인에 활용하고 있다.

주민등록상 지문 정보를 국가에 의무적으로 제출하게 하고 이를 경찰이 상시 활용하는 것은 전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태도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한시라도 빨리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수사기관은 수사 목적에 한해서라면 국민 지문 정보를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60여년간 눈부신 기술 진보…세계 최고 수준

한국 경찰의 지문 감식 기술은 1948년 이후 큰 발전을 거듭했다. 미국 등 수사 선진국에서도 한국의 지문 감식 기술 역량을 인정할 정도다. 오늘날에는 앞선 기법을 개발도상국에 수출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종이에 작성된 범죄자 지문 자료를 하나하나 눈으로 살펴보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경찰은 1990년 금고 이상 전과자의 지문 패턴 특징을 DB로 저장한 뒤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 패턴과 대조하는 지문검색시스템(IFIS)을 구축했다.

초기에는 저장장치 용량이 얼마 되지 않아 지문 자체 이미지가 아닌 패턴 특징만 저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경찰이 운용하는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은 지문 이미지까지 저장할 수 있고, 현장 지문의 특징을 입력하면 컴퓨터가 주민등록 지문 DB에서 특징이 유사한 지문을 자동으로 여러 개 찾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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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몇 개의 ‘후보군’이 등장하면 경찰청 범죄분석센터에 근무하는 감정관이 가장 패턴 일치도가 높은 지문을 육안으로 골라낸다. 경찰청 지문 감정관은 40명으로, 경찰관이 아닌 행정직 공무원으로 임용돼 지금까지 지문 감정 업무만 담당하는 ‘베테랑’들이다. 33년간 지문만 들여다본 감정관이 있을 정도다.

지문 감식은 패턴 특징의 일치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범죄 현장에서 온전한 전체 지문이 확보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부분 일부만 남은 ‘조각지문’이다. 흔히 ‘쪽지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패턴만 선명하다면 온전한 크기의 20%만 남은 쪽지문도 일치하는 지문을 찾아낼 수 있다.

심지어 시신이 미라처럼 심하게 말라붙어 지문 채취가 곤란한 상황에서도 지문을 뜨거운 물에 담가 순간적으로 팽창을 유도, 채취 가능한 상태로 반드는 기법까지 등장했다. 한국 경찰이 자체 개발한’고온습열처리법’이다.

최근에는 손가락 무늬인 지문뿐 아니라 장문(掌紋, 손바닥 무늬)까지 수사에 활용된다. 장문 역시 개인마다 다른 형태를 띠는 점을 이용한 기법이다. 용의자 신병이 확보됐는데 CCTV 등 다른 증거가 마땅찮고, 현장에서 지문 대신 장문이 발견됐다면 용의자의 실제 장문과 대조해 일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지문 감식을 통한 신원 확인 실적은 날로 개선되는 추세다. 2004년 의뢰받은 1만9천577건 중 8천460건(43.2%)만 확인에 성공했지만, 2014년에는 1만9천632건 중 1만1천494건(58.5%)까지 성공률이 높아졌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현장 지문 재검색으로 살인, 강도 등 중요 미제사건을 해결한 사례도 374건에 이른다.

경찰 관계자는 “오늘날에는 실종자나 치매 환자 신원 확인 등 민생치안 분야에서도 지문이 매우 유용하게 활용된다”며 “검색 프로그램의 추출·비교 능력을 향상하고 새로운 기법을 개발하고자 관련 예산을 계속 확보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pul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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