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십억원 횡령해도 5년만 숨기면 내 돈’…공무원 징계시효 논란

2016년 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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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비위 3년·금품 5년, 가정 파탄 내는 성범죄 3년 시효
시효 연장 요구 번번이 제동…정부 “공직사회 안정성 해쳐”

(충주=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지난 3월 감사원에 적발된 충남 천안시 농업기술센터 지소장 A씨는 2008∼2011년 12억 5천200만 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12억 원이 넘는 횡령금 중 문제가 된 돈은 1억 1천200여만 원뿐이었다.

나머지 11억 3천900만 원은 지방공무원법상 징계 시효(5년)가 지나 징계 부가금 대상에서 제외됐다. A씨는 나중에 이 돈까지 자진 반환했지만, 토해내지 않아도 법적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

 

지난해 7월 충북 충주시청 직원 A씨는 다른 지방자치단체 근무 시절 회계업무를 맡으면서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사실이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A씨를 기소유예 처분하고 충주시에 징계 의결을 요구했지만, 징계가 아니라 ‘훈계’에 그쳤다. 2010년 일이라 징계시효(3년)가 완성됐다는 이유였다.

학생을 모집해주는 대가로 대학에서 1인당 최고 4천800만 원까지 받은 혐의로 2013년 대구지검 포항지청에 적발된 고교 교사 48명 중 28명도 시효가 끝나 역시 징계를 피해 갔다.

공무원이 잘못을 저질러도 징계시효가 지나면 징계를 받지 않는다. 물론 비위로 챙긴 돈도 토해내게 할 방법이 없다.

공무원 비리 사건이 크게 터질 때마다 지나치게 짧은 징계 시효가 논란이 돼 시효를 늘리거나 아예 없애자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다.

2013년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청주 청원)은 공무원 징계시효를 크게 늘리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일반 비위 3년, 금품 관련 비위 5년인 징계시효를 각각 7년과 10년으로 대폭 연장하는 내용이었지만,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정부의 강력한 반대 때문이었다.

변 의원은 “대통령 임기 초반 권력 실세 등에 의한 공무원 비리는 제대로 감사가 이뤄지지 않다 임기 말이나 정권 교체 뒤에야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며 “징계시효를 늘려야 실질적인 징계가 가능하고 공무원의 청렴성과 성실한 직무수행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 징계시효 규정은 박정희 정부 때 처음 생긴 뒤 조금씩 수정됐다. 하지만 시대 변화상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애초 대통령령인 징계령에 규정된 징계시효는 일반 비위, 금품 비위 구분 없이 모두 1년이었다.

1973년 공무원법에 관련 규정이 생기면서 징계시효는 2년이 됐다.

이후 금품 비리 징계시효가 1991년 3년으로 늘어난 뒤 2008년 다시 5년이 됐고, 2012년 일반 비위 시효도 2년에서 3년으로 늘었다.

공무원 비리가 끊이지 않자 징계시효를 늘려야 한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대표적인 계기가 2007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이었다.

참여연대는 당시 “외환은행 주식을 론스타에 헐값으로 매각하는 과정에서 관련 공무원들이 불법 행위로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끼쳤지만 징계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주의’를 촉구하는 데 그쳤다”며 국가공무원법 개정 필요성을 제기했다.

참여연대는 당시 각각 2년과 3년이던 일반, 금품 및 향응 관련 징계시효를 5년과 6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건의했다.

공무원 징계시효는 사회적 이슈가 돼 비난 여론이 일 때마다 땜질식 처방으로 찔끔찔끔 늘려왔지만,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한 지방교육청 관계자는 “시대 변화에 따라 공무원 징계 기준이 많이 바뀌고 있을 뿐 아니라 비리 유형별 파급력도 다르다”며 “시대에 뒤떨어진 않는 징계시효와 잣대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큰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성 관련 범죄의 징계시효를 강화하는 등 비리 유형별로 시효를 달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징계시효가 5년인 금품수수보다 피해가 훨씬 더 크고 극복하기 힘든 트라우마를 안기는 것은 물론 가정 파괴까지 이어지는 성범죄 징계시효가 3년인 것은 납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형사사건 공소시효와 비교할 때도 징계시효를 강화하는 건 당연하다는 견해도 많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공무원은 업무 성격, 대우 등을 고려할 때 엄격한 도덕성과 투명성이 요구된다”며 “징계시효가 공소시효보다도 짧은 것은 납득하기 힘들며, 연장하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반면, 정부 안팎에서는 공무원 징계시효가 지나치게 강화되는 데 따른 부작용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징계시효를 크게 늘리면 일벌백계의 메시지를 줄 순 있겠지만 웬만한 비리는 형사 처벌로 이어지기 때문에 실효성은 별로 없다”며 “시효를 불필요하게 늘리면 정권 교체 후 악용될 소지도 있고 자칫 공직사회 안정성을 크게 해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k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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