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하는 범인 때렸다가 전과자’…과잉방어 딜레마

2016년 9월 23일   정 용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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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뉴스(이하)


법 ‘타당한 이유 있어야’ 규정…법원도 정당방위 제한적 인정

(전국종합=연합뉴스) “도둑이 훔친 오토바이로 나를 덮치려는데 그냥 있을 사람이 있을까요?”

전북 고창에 사는 J(52)씨는 지난 8월 자신의 오토바이를 훔친 도둑을 때린 혐의(상해)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J씨는 지난해 8월 4일 오후 2시께 고창군의 한 길가에서 자신의 오토바이를 훔쳐 타고 다니던 A(14)군을 찾아내 대걸레 나무 자루로 목과 팔 등을 11차례 때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J씨는 “A군이 절도가 발각되자 오토바이를 운전해 돌진하는 상황에서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자루를 집어 들어 피해자를 때려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과잉방어’로 판단했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는 “피해자가 ‘그만 때리라’고 말했는데도 피고인의 폭행이 계속됐고 피해자의 무릎을 꿇린 점 등을 보면 정당방위가 성립하지 않는다”라며 “설령 피고인이 피해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 것을 보며 공격했다고 오인했더라도 오토바이를 멈춘 후 대항하지 않는 피해자를 10여 차례나 몽둥이로 폭행한 것은 공격의 의사로 이뤄진 것이다”고 판시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오토바이를 몰고 달려온 것을 ‘상당한 위협’이 가해졌다고 보기 어렵다. 달려오는 오토바이는 피하면 될 일”이라며 “대낮에 공개된 장소에서 미성년인 절도범을 수차례 몽둥이로 때린 것은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실에서 이 같은 물리적인 범죄를 당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형법 제21조 제1항은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애매모호한 부분이 ‘상당한 이유’의 인정 여부이다.

‘상당한 이유’를 폭넓게 인정하면 법질서가 흔들린다. 법원이 정당방위를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법원은 자기 집에 침입한 절도범을 때려 식물인간으로 만든 집주인에 대한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2부는 지난 5월 이른바 ‘도둑 뇌사’ 사건으로 기소된 최모(22)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씨는 2014년 3월 8일 오전 3시 15분께 강원 원주시 남원로 자신의 집 서랍장을 뒤지던 김모(당시 55)씨를 주먹으로 때려 넘어뜨리고 빨래건조대로 폭행해 뇌사에 빠뜨린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어 입원 치료를 받다가 같은 해 12월 폐렴으로 숨졌다.

항소심 도중 김씨가 사망해 상해치사 혐의로 공소장이 변경됐다.

최씨는 “절도범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정당방위 또는 과잉방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방어가 아닌 ‘공격을 위한 행위’라고 판단해 최씨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은 “아무 저항 없이 도망만 가려고 했던 피해자의 머리를 장시간 심하게 때려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로 만든 행위는 절도범에 대한 방위행위로서 한도를 넘었다”며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2심도 “신체를 결박하는 등 다른 수단을 강구하지 않은 채 의식을 잃을 때까지 때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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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최초 폭행 이후부터는 피해자가 최씨 또는 가족의 생명·신체에 급박한 위험을 초래할 만한 행동을 한 사정을 찾을 수 없다. 추가 폭행은 일반적 방위의 한도를 현저히 넘은 것으로 방위행위보다는 적극적 공격행위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2심은 다만 김씨가 최씨 집에 침입해 사건의 발단을 제공한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처럼 사법기관은 폭행과 상해 등이 정당방위인지 판단할 때 해당 행위가 급박한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가피했는지를 엄격히 따진다.

의정부지검은 2012년 12월 성폭력 저항 과정에서 가해자의 혀를 깨문 20대 여성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해 불기소 처분했다.

당시 상황의 불가피성과 성폭력 피해자의 자기 방어권을 폭넓게 인정한 것이다.

이런 논란에 대해 이수정 교수는 “정당방위가 인정되려면 ‘상당한 위협’, ‘현재 진행형’ 등의 구성요건을 갖춰야 한다”며 “신체에 대한 위협이 끝난 뒤에도 방위행위를 계속했다면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위협의 ‘상당성’에 대한 판단은 법관의 몫인데, 법원의 판단은 굉장히 보수적”이라며 “정당방위를 남용할 경우 상대에 대한 과잉 제압이 만연하는 등 다양한 문제점이 야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고 부연했다.

‘도둑 뇌사 사건’에 대해 이 교수는 “객관적 사실로 보면 흉기를 들이대는 등의 위협행위는 없었으나 집주인 입장에서는 깜깜한 밤에 집에 들어온 절도범 자체를 상당한 위협으로 느꼈을 수 있어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당방위는 말 그대로 ‘방어’에 방점을 두고 있어 공격당하는 것을 제지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며 “그 이상의 응징은 사적인 감정을 섞어 물리력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실생활에서 개인이 정당방위의 수준을 가늠하기는 매우 어렵고 사실 법원에 의해 사후판단되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정당방위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권숙희 강영훈 이재현 김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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