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서울대생이 쓴 ‘저는 평범한 의경입니다.txt’

2016년 11월 14일   정 용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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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JTBC 방송화면 캡처/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이하)


‘최순실-박근혜 게이트’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지난 11월 5일에 이어 12일 분노한 민심이 거리로 쏟아졌다.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역대 최대 수준인 100만 명(경찰 추산 26만명)의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시위를 벌였다. 큰 무력 충돌 없는, 평화로운 집회가 진행된 가운데 자신을 ‘의경’이라고 밝힌 한 서울대생의 글이 누리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난 11일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에는 “저는 평범한 의경입니다. 오기 싫었지만 군대에 와야 했고 외출 보내준다는 말에 혹해서 의경에 지원했고 약자를 가까이서 보호하고 싶다는 거짓말을 해서 붙었습니다”라는 글로 시작하는 사연이 올라왔다.

그는 “스스로를 머리가 좋은 인간이라고 자부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21개월이라는 시간은 어차피 줄어들지 않으니, 일상 속에서 최대한 내가 편안하고 이득을 보는 게 중요합니다. 주어진 일은 그냥 하고, 그 이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게 마음이 편하죠. 차라리 남는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게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자기계발이고 뭐고 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저 11월 12일만 지나가라, 그럼 모든 게 끝나겠지, 하고 바랬습니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이어 “지난 주 토요일, 그러니까 5일에도 저는 광화문에 있었습니다. 출동을 나가기 전에 부대원들과 장난처럼 언제쯤 집에 돌아올까에 대한 얘기를 했어요”라며 시위현장에 있었던 지난 5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광화문에 도착해보니 낮인데도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곧이어 차벽이 설치됐습니다. 높은 담장과 버스들의 긴 행렬을 보면서 저는 내심 안도했습니다. 최소한 몸으로 부대끼지는 않겠구나. 난 안전할거야. 물론 긴장의 끈은 놓을 수 없었지만요”

집회는 기적적으로 단 한 번의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그의 예상과 달랐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기분이 좋았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그가 우연히 접한 사진에는 5일 광화문 풍경을 하늘에서 찍은 모습이 담겼다. 얼핏 봐도 10만명은 넘어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는 순간 저 아래쪽에서 뭔가 뜨끈한 게 올라왔다. 그는 “저 많은 점들 중에 나는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별도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른 낯선 사람들이 모두 한 장소에 모였다가 평화롭게 집으로 돌아가는 풍경이 머리에 그려졌습니다. 분명 전 날의 저는 보지 못한 풍경이었죠. 부끄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해서 몇 십 초 동안 사진 위의 커서만 꼼지락거리고 있었습니다. 늘 보던 세종대왕상이 그렇게 외로워 보인 건 처음이었습니다.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라고 고백했다. 그저 아무 일 없기를, 빨리 집에 돌아오길 바랬던 그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것.

이어 지난 5일 대구에서 열린 시국대회 발언대에 올라 화제가 된 ‘대구 여고생 발언’을 접한 그.

그는 “말을 참 조리있고 당당하게 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그 학생은 발언 말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정의라는 단어가 왜 그렇게 제 마음에 콕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국기에 대한 맹세일 뿐인데. 그전까지 저는 정의라는 단어의 무게를 느껴본 적이 없었습니다”라며 “말씀드렸듯이 저는 머리가 좋은 인간이어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추상적인 가치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거든요. 그런데 소녀의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간질간질해지면서, 나도 정의라는 걸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는 “정의로운 사회라는 건 어떻게, 언제 오는 걸까요. 그건 한두 사람의 노력이나 높은 사람의 지시로 만들어지는 건 아닐 거에요. 12일의 집회 한 번으로 찾아오는 것도 아닐 겁니다”라며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도 그건 사진 속 한 개의 점이 되고자 기꺼이 거리로 나오는 시민들에 의해서 천천히 만들어지는 거라고. 대구의 한 여고생이 퍼뜨린 정의의 불씨가 전염병처럼 퍼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거라고”라고 말했다.

그저 ‘21개월’만 버티자는 그의 마음은 바뀌었다. 그는 그러한 정의로운 세상, 사회를 위해 자신이 있는 지금 이 자리를, 이 일을 더 좋아하기로 했다.

그는 “헌법에 보장된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일, 그게 제 일이니까요. 내일도 저는 광화문에 있을 겁니다. 어쩌면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주에도, 그 다음 달에도요. 분명 몸은 고될거고, 경우에 따라서는 방패를 사이에 두고 여러분과 마주보는 일도 있겠죠”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기억해주세요, 우리는 적이 아니라는 걸. 서 있는 위치는 다를지 몰라도,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서로를 응원하고 있다는 걸. 마지막으로 모든 집회 참가자 분들과 경찰 관계자 분들의 안전을 기원하면서 이 글을 마칩니다”라고 덧붙였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11월 어느 날 적힌 그의 글에 많은 누리꾼들은 감동했다.

“후배님. 그 마음 왜 모르겠습니까. 저 역시 노무현정권시절 단셋에서 의경생활 하다가 전역했는데….그 마음 잘 간직하시고 전역날까지 무사히 건강하게 지내시길 기도합니다”

“’의경 개새끼들’이라 욕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보며 조금은 줄었으면 한다. 화잇팅 평범한 의경”

“응원합니다. 우리 의경 동생들. 그 마음 누구보다 공감하고 이해합니다. 우리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고 어느 위치에서든 모두가 정의롭고 행복한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힘을 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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