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뉴스] 길 묻는 외국인, 부끄러워하는 한국인

2016년 11월 28일   School Stroy 에디터

(서울=연합뉴스) 한혜원 기자·우태경 인턴기자 = 외국인이 길을 물을 때, 영어를 못해서 부끄럽다는 반응을 보이는 한국인이 많습니다. 연예인의 영어 실수를 캡처해 과도하게 비난하거나, 영어 발음이 유창하지 않은 사람을 비웃는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죠. 우리는 만국 공용어도 아닌, 한국 공용어도 아닌 영어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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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묻는 외국인, 영어 실력을 부끄러워하는 한국인

외국인이 길을 묻기 위해 말을 걸었습니다. 이에 한국인은 영어를 잘 못해 죄송하다며 부끄러워하고 있죠. 이 상황이 영어권 나라가 아니라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믿을 수 있겠나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연예인의 영어 실수를 캡처해 과도하게 비난하거나, 영어 발음이 유창하지 않은 사람을 비웃는 모습도 쉽게 발견할 수 있죠. 이렇듯 우리에게는 외국어인 영어를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돼 있습니다.

영어를 잘 해야만 하는 이유? 영어를 잘 해야 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아마 “영어는 만국공용어니까”였을텐데요. 우선, 영어는 만국 공용어가 아닙니다.

국제회의, 기구 혹은 학술 논문에서는 공용어의 역할을 할지 모르나, 아직 하나의 언어가 세계 공용어로 지정되지는 않았죠. UN 역시 영어 외에도 5개의 언어를 포함해 총 6개의 언어를 세계 공용어로 지정했습니다.

우리나라 공용어도 아니다! – 한국의 공용어는 ‘한국어’와 한국수화언어법 시행으로 올해 8월부터 추가된 ‘수어’뿐입니다. 세계 공용어도 아닐 뿐더러 우리나라의 공용어도 아닌 영어를 못한다고 비난할 것도, 부끄러워할 것도 없는 것이죠.

하지만 한국의 교육 현장을 살펴보면, 영어가 한국의 공용어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전국 곳곳에 영어마을이 있는가 하면, 영어유치원과 국제학교는 높은 학비에도 인기가 많죠. 자녀의 어학연수를 위해 한국에 혼자 남는 기러기 아빠 역시 한국에 유독 많습니다.

국어 맞춤법보다 영어 철자와 발음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거나, 국어 사교육 두 배의 돈을 영어 사교육에 투자하기도 하죠.

<자료> 월평균 사교육비 조사(윤선생, 2014년 미취학 및 초등생 자녀를 둔 학부모 534명 대상) 국어 사교육비: 월평균 6만6천 원, 영어 사교육비: 월평균 15만4천 원

기업 역시 상당수가 외국어 성적을 요구하지만, 국어 실력을 묻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인사담당자들이 실제 업무에 필요하다 느끼는 한국어와 외국어 비중은 65 대 35로, 한국어가 훨씬 높습니다(취업포털 사람인, 2013년 기업인사담당자 185명 대상 조사. 신입사원 채용 과정에서 외국어 공인 성적을 요구하는 기업 31.9%, 국어 성적 요구 기업 4.3%)

영어를 한국의 제2 공용어로 만들자는 주장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영어를 잘하는 것을 국가경쟁력이라고 생각하고,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해 한국을 영어 강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외국인이 앞에서 영어 실력에 부끄러워 하는 나라. 영어 발음에 민감한 나라. 한국어 실력보다 영어실력에 신경쓰는 나라. 영어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씁쓸한 현주소입니다.

hye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