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걸림돌아냐” 청각장애 이겨낸 미모의 슈퍼모델 (동영상, 사진 4장)

2017년 5월 10일   정 용재 에디터
▼사진·동영상 출처: 연합뉴스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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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손미정 기자 = 초등학교 4학년 때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병원에서는 ‘집중을 하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다’고만 했다. 부모님조차 그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불러도 대답을 안 한다, 건방지다는 등 오해도 많이 받았어요. 친구들에게 맞기도 많이 맞고 욕도 먹고 왕따도 당했어요.” 하지만 그는 잘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을 숨겼다. 큰 병이 밝혀지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에서였다.

“아픈 시간이 있었기에 더 단단해진 것 같아요.” 추아림은 2013 슈퍼모델 대회에서 16명만이 진출하는 본선 무대에 당당히 올랐다. 청각장애 4급. 자신을 둘러싼 편견 속에서도 대회 무대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픈 시간을 지나 이제는 ‘청각 장애인 모델 추아림입니다’라고 당당히 자신을 소개하는 밝은 에너지의 그녀, 모델 추아림(25)을 연합뉴스 공감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장애판정을 받은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아림이가 입 모양만 보고 알아듣는 것 같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서다. 그는 “장애판정을 받고 엄마아빠가 엄청 우셨다”며 “나도 너무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고 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사는 삶에 적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청기를 끼고 싶지 않아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힘든 시기에도 그는 끝까지 ‘모델’이라는 꿈을 향해 걸었다. 모델이었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어머니가 모델 활동을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그런 어머니의 구두 소리를 좋아했거든요. 모델 캠프도 다니면서 모델을 업으로 삼아야겠다는 확신이 섰어요.”

모델이 되기 위해 고향인 대구에서 상경했다. 서울에 올라와서 만난 업계 관계자는 그에게 ‘모델 일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170cm로 모델을 하기엔 애매한 키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장애가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추아림은 그 말을 듣고는 오히려 ‘모델을 꼭 하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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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분께 이야기를 듣다가 제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도 되겠냐고 여쭸어요. 그리고는 ‘저 오기 생겼어요. 꼭 하고 말 거에요 두고 보세요’라고 이야기했죠.” 그는 슈퍼모델 대회 첫 도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좌절하던 추아림에게 어머니는 ‘도전은 성공의 지름길’이라며 딸을 응원해줬다. 여기에 누나에게 쏠린 가족의 관심 탓에 일찍 철이 들어버린 ‘누나바보’ 남동생, 누구보다 딸을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도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래서인지 추아림은 ‘모델이 되고 나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슈퍼모델에서 상을 탔을 때라고 했다.

“그때 아빠가 웃는 걸 처음 봤어요. 아빠는 제가 슈퍼모델상을 받고 나서부터 제가 나온 신문이며 잡지를 다 스크랩해서 탁자 유리 밑에 넣어두세요. 아빠가 되게 무뚝뚝한 편이시거든요. 그런데 아빠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어서 신기해요.”

정작 모델 활동을 시작한 후에는 장애로 힘든 일은 없었다. 그의 노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주변의 배려가 컸다. 그는 “처음에는 나를 무시하지 않을까, 괜히 나를 나쁘게 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개하기 싫었다”면서 “그런데 한번 공개하니까 사람들이 배려해주는 것이 보이더라. 그런 분들이 있었기에 점점 (장애 사실을) 밝힐 용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최근 추아림은 2017 서울모터쇼에서 모델로 섰다. 화보나 광고촬영, 패션쇼 현장에서 주로 활동해 온 그는 모터쇼에 선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조명 아래에서 포토그래퍼와 작업하는 대신에 수많은 관객과 직접 마주하는 것은 꽤 새로운 경험이었다. 당시 추아림은 관객 한명 한명과 눈을 마주치며 자신을 향한 관심에 보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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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는 주제가 정해져 있는 반면에 모터쇼는 제가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어요. 모델이나 차만 쳐다보는 것보다는 관객들이 모델과 눈빛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슈퍼모델로 모델계에 입성한 그는 줄곧 자신의 롤모델을 미스 프랑스이자 모델 겸 배우, 그리고 인권운동가인 소피 부즐로라고 밝혀왔다. 그 역시도 추아림과 같은 청각 장애인이다.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피 부즐로처럼 이제는 연기에도 도전하고 싶고, 더 나아가서는 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는 그다.

“청각 장애인이 아픔이 많잖아요. 그래서 감정이 더 풍부해요. 청각 장애인도 할 수 있다, 그렇게 장애는 도전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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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아림의 도전에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용기를 갖고 더 당당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기회가 된다면 노래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어떻게 보면 저의 한계를 느끼겠지만 그래서 더 도전해보고 싶어요. 제가 주눅이 들면 다른 분들은 일어날 수 없잖아요. 카메라 앞에 서는 직업을 가진 제가 당당해야 다른 분들도 더 당당해질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이에요.”(촬영 : 김태호 전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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