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존중’과 ‘스승공경’의 사회적 풍토를 조성한다며 제정된 스승의 날을 앞두고 있지만 교육 현장에서는 스승에 대한 공경이나 교권에 대한 존중은 ‘무너져 버린 것이 오래다’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학생이 교사에게 욕설과 폭행을 하고, 학부모가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교실에 찾아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를 모욕하는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제 많은 교사들이 제자들에게 정과 사랑을 느끼기 전에 ‘두려움’을 느낀다고 호소하고 있다.
“선생님이 싸가지가 없네.”
지난해 4월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제지하던 여교사 A씨는 학생으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수업을 방해하던 한 학생을 복도로 내보내 훈육하던 중 교실 안에서 자신을 비웃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A씨가 자신을 비웃은 학생 B군에게 “뭐라고 했니?”라고 반문하며 추궁하자 B군은 “너 하는 꼬라지가 싸가지 없으니 X같게 굴지 마”라고 말하며 교과서를 A씨의 얼굴에 던졌고 A씨는 인중이 2㎝ 정도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학교는 해당 학생에 대해 징계를 내리긴 했으나 A씨의 마음은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A씨는 다른 학교로 자원해 전보를 갔다.
◇ 교권침해 10년사이 ‘3배’ 증가했지만 교사들 ‘밖에 알리지 못해’
이같은 교권 침해의 사건은 A씨 한사람의 사례는 아니다. 지난달 12일 한국교직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발표한 ‘2016년도 교권회복 및 교직상담 활동 실적결과’를 보면 교권침해로 인한 상담 건수는 2006년 179건에서 2016년 572건으로 3배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혹시 모를 불이익과 교사라는 책임감 때문에 교권침해 사건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학생들 사이에 ‘왕따 문제’를 일으킨 한 아이를 훈육하며 경각심을 주기 위해 “잘못하면 경찰에 갈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경고했던 초등학교 교사 C씨는 해당 학생의 부모에게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들어야 했다.
다짜고짜 “내 애를 경찰에 왜 보내냐”라며 흥분한 채 전화를 건 학생의 어머니는 방과 후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던 교실까지 찾아와 멱살을 잡고 “죽여버리겠다”며 욕설을 퍼부었다.
“교사이기 전에 사람으로 자존심도 있고, 민·형사상으로 어떻게 해볼까도 생각해 봤다”는 B씨였지만 쉽사리 법적인 조치를 할 수는 없었다. ‘교사로서 부모와의 문제도 원만히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회의 시선 때문이었다. 실제로 B씨는 “학내 교권 침해 사례가 발생했음에도 교사가 ‘품위유지를 못했다’며 오히려 징계를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주변의 동료 교사들도 오히려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사건을 조용히 덮으라’고 권유했다.
결국 문제를 일으킨 부모가 사과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B씨는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쉽게 지울 수가 없었다. B씨는 “스승의날이면 그 학생이 연락해 오는데 그때마다 당시 생각이 나 힘이 든다”고 말했다.
◇ 욕설하는 학생에 참지 못해 손들었다가 처벌 받기도
이렇게 반복해 발생하는 교권침해 사례에 교사들이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학생들이 교사를 공공연히 무시하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또 이런 학생들의 태도에 참지 못한 교사가 처벌받는 일도 발생했다.
서울 소재의 한 중학교에서 시간제 체육교사로 근무하던 강모씨(가명, 36)는 교사를 무시하는 학생을 지도하려다가 화를 참지 못하고 손찌검하게 됐다.
지난해 10월 강씨가 수업을 진행하던 중 한 학생이 돌연 조퇴를 하고 집에 간다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학교를 벗어나려 했다. 강씨는 당황해 학생을 쫓아가 말렸지만 학생은 오히려 강씨를 밀치며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내뱉었고 흥분한 강씨는 학생의 얼굴과 머리 등을 수차례 때렸다.
강씨는 “학생을 때린 것은 물론 제가 잘못한 것임을 인정한다”면서도 “20명이 넘는 다른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선생님을 완전히 무시하고 부모까지 들먹이는 욕을 하는 학생을 보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학생의 부모는 치료비와 위로금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지만 강씨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학생의 부모는 강씨를 고소했다. 결국 강씨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재판부는 “학생이 교사에게 수차례 욕설을 하고 전혀 존중하지 않는 등 그 역시 사제간의 윤리를 저버린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로 오랫동안 시간제 교사로 일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해온 강씨는 10년 동안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박탈당했다. 현재 추가적인 증거들을 수집해 2심을 준비하고 있는 강씨는 “평소 교권 침해 문제를 겪는 교사들을 보면 그냥 좋게 넘어가는 게 좋겠다고 했었는데 내가 겪어보니 너무도 억울하다”고 밝혔다.
◇ “교사 인권 바닥” 이제는 ‘법개정’ 필요해…공교육 회복 목소리도
교총은 이런 교사들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현재 관련 법인 ‘교원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의 개정을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국회에서도 교권침해 행위를 한 학생의 보호자에 대한 처벌 규정과 정당한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학생에 대한 징계조치를 보완하는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학교에서 교권침해 사건이 발생할 경우 학부모에게도 그 책임을 묻고 학생에게 좀 더 엄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다.
교총 관계자는 “그동안 교사들에 대한 교권침해 사례가 계속해 늘고 있고 그 정도도 심해졌다”며 “욕은 기본이고 기본적으로 선생님에 대한 인식도 많이 저하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가능하면 학생·학부모와의 문제를 가능한 한 원만하게 푸는 것이 원칙이겠지만 정도가 지나쳐 교육 자체가 안되는 상황에선 법률적 강제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교권침해를 막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공교육에 대한 불신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도승이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부모님들이 학교의 기능적 요소만 너무 집중해서 점수 못 높여주고, 학교에서 애들 붙잡으니까 사교육도 제대로 못 시킨다고 생각하니까 학생들이 학교에 대한 존중이 없는 것”이라며 “교육에 대해 단순히 학업성취가 전부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도 교수는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학교에서 배우는 정서적인 요소나 사회적인 요소 또한 학업성적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며 “학교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지고 공교육을 신뢰하는 학생일수록 오히려 성적도 잘 나온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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