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이 왜곡한 이순신 장군에 대한 내용 5가지

2017년 5월 16일   정 용재 에디터
▼사진출처: 온라인 커뮤니티 (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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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혐한들이 일본어 위키백과의 이순신 문서를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혐한들에게 충무공은 주요 왜곡대상 1순위로, 그 왜곡의 범위가 매우 크고 심하다고 한다. 특히 일본의 위키백과의 경우에는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이순신 항목을 왜곡하고 있는데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일본이 왜곡하고 있는 부분은 어떤 부분일까?

1. 장문포 해전, 영등포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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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포 해전, 영등포 해전, 제 2차 장문포 해전은 원균의 인척인 좌의정 윤두수의 주도로 계획되어 조선의 육, 수군이 협력하여 진행된 전투로 6일 동안 전투를 치뤘으나 일본군이 응전하지 않아 왜척 2척을 격침하는 성과만 올린 전투였다.

이 전투에서 이순신을 비롯한 일부 장수들에게는 주도권이 없었으며, 조선 육군과 수군은 어떤 피해도 입지 않았지만 대규모의 군대가 동원되었음에도 일본군을 토벌하지 못해 실패한 전투였다.

이에 대해 일본 위키백과에는 수 차례의 공격이 실패하고, 이순신이 후쿠시마 마사노리와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격퇴되었다고만 설명하고 있다.

2. 명량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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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위키백과에는 명량 해전에 대해,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을 조류가 빠른 명량해협으로 유도해 공격, 승리를 거두지만 왜군의 후속 부대가 강대하기에 후퇴하여 적의 침공을 허용한 것으로 되어있다.

그리고 전투의 결과에 대해서는 전술에서 패배하고 전략에 승리했다는 자위성 기술을 하고 있다.

3. 순천 왜교성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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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왜교성 전투에서는 조선, 명, 일본 모두 큰 피해를 입었으나, 일본 위키백과에는 조,명 양군이 큰 피해를 입고 패한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로 이 전투에서 조선군 130명 전사, 명의 전선 30척 격침, 명 수군 2000명이 전사하였으나 일본군은 전선 11척을 나포당하고 30척이 격침, 3000명이 사상하였다.

4. 노량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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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 해전에서 조선군은 83척, 명은 63척의 전선을 갖추고 있었고 일본군은 500척의 전선을 배치하고 있었으나 일본군은 겨우 50여척만이 간신히 퇴각하는데 성공했다.

조선군은 충무공을 포함한 조선군 300여 명, 명군은 500여 명의 사상자를 내었던 전투였다.

하지만 일본의 위키백과에는 조선, 명 수군이 일본군에 패퇴, 조선의 주요 장수들이 다수 전사하고 큰 피해를 입어 일본 수군을 추격하지 못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5. 충무공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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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로에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태평로가 뻥 뚫려있기 때문에 남쪽, 일본의 기운이 강하게 올라와 이를 제어해야 한다는 풍수지리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세워진 동상이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세종로 네거리에 일본이 가장 무서워 할 인물의 동상을 세우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 위키백과에서는 충무공의 동상이 ‘군사정권의 권력과 힘의 상징’이라고 설명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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