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관광명소가 된 샌프란시스코의 알카트라즈 감옥은 한때 미국에서 가장 악명 높은 감옥이었다.
1934년 8월, 미국 정부에 의해 연방 감옥으로 지정돼 알 카포네, 조지 켈리, 로버트 스트라우트 등을 비롯한 미국 역사상 유명했던 강력 범죄자들을 수감해왔다.
악명 높은 수감자들 때문이 아니라 알카트라즈 감옥이 유명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탈출이 불가능한 감옥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차례 탈출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로 끝났고 공식적으론 알카트라즈 옥을 탈출한 성공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물론 공식적으론 말이다.
▲알카트라즈 감옥
그러나 1962년 구름 한점 없는 어느 여름밤, 죄수 3명이 알카트라즈 섬을 탈출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탈출 계획은 몇 달에 걸쳐 치밀하게 진행된 것이었고 당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대담하고 독창적인 이 탈출은 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알카트라즈 탈출 의 소재가 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1979년작 알카트라즈 탈출 / 프랭크 모리스 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FBI에서는 탈주범들이 차가운 샌프란시스코 만에서 익사했을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과연 FBI의 발표대로 그들은 탈출에 실패한 것일까? 아니면 모두를 감쪽같이 속이고 홀연히 사라져버린 것일까?
● 사건의 전말
1962년 6월 12일 새벽, 알카트라즈 교도관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당연히 기상 점호를 해야 할 죄수 3명이 돌연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죄수 3명 대신 침대에 놓여있던 것은 정교하게 만든 사람 머리 모형이었다.
교도관들은 저녁 점호 후 1시간 간격으로 밤새 감옥을 돌아다니며 감시했지만 죄수 3명과 머리 모형이 바꿔치기된 것을 새벽이 되어서야 알아차린 것이다.
▲당시 발견된 머리 모형
탈출 경보가 울리고 간수들은 배를 타고 섬 주위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동시에 섬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탈출범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곧 샌프란시스코 사상 최대 규모의 수색이 시작됐다. FBI와 해상 경비대, 고속도로 경비대, 보안관 여기에 지역 경찰들까지 수색에 동참했다.
하지만 대규모 수색의 성과는 미미했다. 그들이 찾은 것이라곤 버려진 탈출 재료들과 샌프란시스코만 해안에서 발견된 고무보트 조각뿐이었다.
FBI는 차량 도난이나 주거 침입, 옷 가게 강도 사건뿐 아니라 노상강도 사건을 모두 조사했지만 그들과 연관된 사건은 하나도 없었다.
알카트라즈 감옥 죄수들이 탈출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던 가운데 탈출 이틀 후 1962년 6월 14일, 죄수 한 명이 FBI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놨다.
그는 탈출 팀의 4번째 멤버였지만 탈옥하지 못한 채 감옥에 남겨진 알렌 웨스트였다. ( 탈옥범들은 3명인데 반해 머리 모형이 4개인 이유 )
▲알렌 웨스트
웨스트는 탈출 계획이 프랭크 모리스가 아닌 자신의 아이디어였다고 밝혔다. 과연 그가 정말 이 대단한 탈출 계획을 세웠을까?
웨스트는 1957년 처음 알카트라즈에 수감됐고 공격적 성격과 계속된 탈출 시도로 간수 사이에서도 악명이 높았다.
알카트라즈 감옥은 총 4개의 건물이 서로 등을 맞대고 3층 높이로 세워져있었고 감방이 수십 개씩 있었다.
감방 뒤로는 20cm의 두꺼운 콘크리트 벽이 있었고 그 뒤엔 감방 건물의 맨 꼭대기까지 이어지는 옥내관이 지나간다.
▲알카트라즈 감옥 구조 / 옥내관 ( 화살표 )
▲감방벽뒤 옥내관과 탈출 구멍
죄수들이 감옥 전체를 지었기 때문에 기술 편차가 컸다.
즉 콘크리트가 튼튼한 구역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구역이 있다는 말이다.
웨스트는 평소 행실 때문에 간수들 사이에서 평판이 안 좋았다.
그렇기 때문에 먼지 청소와 같은 아주 힘든 일만 할당받았다.
그는 지저분한 감방 뒤 복도 청소를 도맡아 했는데 그 일로 인해 감옥 콘크리트의 약점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웨스트는 여느 때처럼 옥내관 복도를 청소하다 탈옥범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물건을 발견했다.
환풍구 쪽에 녹슨 톱날과 줄이 기름종이에 쌓여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전의 누군가 탈옥시도를 하다 숨겨놓은 것인듯했다.
웨스트는 그것을 제자리에 다시 잘 숨겨두고는 탈출 계획을 본격적으로 세우기 시작했다.
그는 같이 탈출할 죄수들을 물색했고 적합한 인물들을 탈출 계획에 끌어드렸다.
웨스트는 먼저 존과 클래런스 앵글린 형제에게 계획을 말했다. 앵글린 형제는 건강했고 헤엄을 잘 쳤지만 똑똑한 타입은 아니었다.
형인 존은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교육수준이었고 동생인 클래런스는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교육수준이었다.
▲클래런스 앵글린 ( 동생 ) / 존 앵글린 ( 형 )
어설픈 은행강도 짓을 하다 사형 판결을 받은 뒤 다른 교도소 수감되었고 탈옥을 시도하다가 실패해서 알카트라즈로 오게 됐다.
웨스트가 이들을 탈출 멤버로 선택한 이유는 제어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탈옥 생각이 있었던 앵글린 형제는 웨스트의 계획에 동참했고 지붕 밑 환풍구를 통해 옥상에 올라갈 수 있단 사실도 알려주었다.
12월에 프랭크 모리스가 마지막 멤버로 합류하면서 4명으로 이루어진 탈옥 팀이 완성됐다.
▲프랭크 모리스
미국 교도소의 탈출 마법사로 유명했던 프랭크 모리스는 이미 10대 초반부터 마약과 강도 전과가 있었고 1960년 1월에 알카트라즈에 왔다.
모든 시설에서 탈출을 감행한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알카트라즈만이 그를 가둘 수 있는 곳이었다.
실제로 그는 I.Q 133으로 아주 영리했다.
( 영화 알카트라즈 탈출 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프랭크 모리스 역을 맡음. )
탈옥이 일어난 밤에 섬에 있었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정확히 누가 탈출 계획을 세웠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어떤 이들은 웨스트가 주모자라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모리스가 주모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몇 달에 걸친 탈옥 계획을 살펴보면 알렌 웨스트가 모든 것을 계획한 것이 드러난다.
탈옥 1단계는 클래런스가 식당에서 훔친 숟가락을 콘크리트 바닥에 갈아 끌 만든 법을 알아냈을 때 시작됐다.
그들은 더 많은 숟가락을 훔쳐내 각자 자기 감방의 환풍구 옆벽에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죄수 4명은 잘 훈련된 팀처럼 행동했다. 그들은 5시 30분 점호 때부터 9시 30분 점호 때까지 구멍을 파는 일을 했다.
집중적으로 구멍을 파는 시간은 저녁 6시 ~ 7시의 음악 시간이었다. 이 시간은 죄수들이 악기를 연주하기 때문에 감옥 안이 많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감방 환풍구 벽에 구멍을 내면 바로 뒤 옥내관 복도로 들어가 지붕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감방은 존 앵글린 → 클래런스 앵글린 → 알렌 웨스트 → 프랭크 모리스 순으로 붙어있었다.
그들은 들키지 않기 위해 하루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거울을 가지고 감방 좌우를 살폈고 나머지는 열심히 구멍 파는 작업을 했다.
파고 남은 시멘트 조각은 물에 흘려보냈다.
▲당시 탈옥 감방 ( 아직도 보존되어있음 )
점차 구멍이 커져 숨기기 어려워지자 4명 모두 종이에 색칠한 가짜 창살을 만들고 구멍 위를 덮었다.
이 가짜 창살은 매우 잘 만들어져서 간수들은 전혀 알아챌 수가 없었다.
▲가짜 창살
구멍이 완성되자 모리스와 앵글린형제는 간수가 1시간 마다하는 인원점검을 피하면서 감방 벽 뒤 밖에서 작업했다.
3명의 작업장은 감방에서 약 10m 정도의 거리에 있었고 보통 때라면 간수의 눈에 잘 보이는 곳이었지만 영리한 웨스트의 술책 덕에 그곳은 보이지 않게 됐다.
웨스트는 감옥 도색 작업을 맡아하고 있었는데 위( 작업장 위치 )로 올라가서 먼지가 마구 일도록 바닥을 쓸어댔다.
먼지가 계속해서 바닥으로 떨어지자 다들 화를 냈고 이에 웨스트는 도색을 해야 되는데 너무 더러워서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리곤 먼지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이불로 가리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교도소 측은 철창에 이불 30개를 걸치도록 허가해줬고 이 이불은 이들이 탈옥할 때까지 간수들의 눈을 피해서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줬다.
▲사건 당시 작업장과 버리고간 공구와 재료들
간수들을 제외한 다른 죄수들은 웨스트의 작업장을 다 알고 있었고 다들 그들의 탈출 계획 도와줬다.
동료 죄수들은 그들이 가짜 머리를 만들 수 있게 붕대 등과 같은 재료들을 구해줬고 색칠도 도와줬다.
▲사건 당시 발견된 가짜 머리모형
가짜 머리뿐만 아니라 그들은 차갑고 위험한 샌프란시스코만을 건너기 위해서 구명보트와 구명조끼를 만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안이 심한 교도소 내에서 재료를 구할 수 있었을까?
답은 역시 다른 죄수들의 도움이었다. 다른 죄수들이 건네준 방수 비옷으로 구명보트를 만들었던 것이다.
▲죄수들이 사용하던 비옷
소지 가능한 비옷의 개수는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A란 죄수가 비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서 탈옥 팀에게 비옷을 벗어주면
그들은 건네받은 비옷을 입고 감방으로 돌아오는 방법으로 50벌 이상의 비옷을 구했다.
50벌이면 구명보트와 구명조끼 4벌을 만들고도 남을 충분한 양이었다.
탈출 계획에 필요한 재료들은 재료는 옥내관 복도를 통해 오고 갔다.
웨스트만이 유일하게 자기 감방 안에서 탈출을 준비했다.
FBI의 진술서에 따르면 그 이유는 스스로 감방에 구멍을 너무 크게 파서 간수들에게 쉽게 들킬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앵글린형제가 시멘트를 가져와서 보수공사를 해줬는데 이번엔 구멍이 너무 작아져서 웨스트가 통과할 수 없었다.
목수였던 앵글린 형제는 작업장에서 책임지고 구명보트를 만들었다. 크기는 가로 4.2m 세로 1.8m 크기였고 가장자리마다 40cm 짜리 플로트를 설치했다.
▲구명조끼와 구명보트에 바람을 넣는 튜브관
남아있는 사진들을 보면 구명보트는 수용성 접착제와 바늘로 꿰매서 만든듯하다.
6월 초가 되자 구명보트와 다른 탈출 장비들은 거의 완성됐다.
▲당시 만든 노
1962년 6월 11일 저녁 8시 45분, 6달의 준비가 끝나고 4명의 죄수는 탈출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환풍구 뚜껑만 열면 탈출을 할 것이라고 모리스가 웨스트에게 알렸다. 환풍구 팬이 9시 반이 되면 돌아가기 때문에 그전에 환풍기 뚜껑을 제거해야 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만 웨스트는 감방벽을 막고 있던 콘크리트를 그제야 제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멘트는 쉽게 깨지질 않았고 클래런스가 도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모리스와 웨스트, 앵글린 형제는 9시 30분 저녁점호에 참석하기 위해 감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불이 꺼졌다.
간수들은 밤새 매시간 전등을 들고 인원수를 체크했지만 어두운 방안에 남아있는 것은 가짜 머리뿐이었다.
▲가짜 머리
이들에게 지금 가장 소중한 것은 시간이었다. 당직 간수들이 가짜 머리에 속기만 한다면 다음날 아침 점호까지 경보는 울리지 않을 것이었다.
그 정도면 도망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탈출 1시간 전 모리스와 앵글린형제는 마지막 준비로 바빴다. 한편 콘크리트를 제거하려는 웨스트의 노력은 효과가 없었다.
모리스는 쇠지레를 가지고 내려와 마지막으로 밀어보자며 앵글린형제를 데리고 오겠다고 한 뒤 다시 올라갔다.
밤 9시 37분, 웨스트가 모리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시간이다. 이제 탈출 팀 4명에서 3명으로 줄어들었다.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이 다음 목표였다. 앵글린형제가 몇 주 동안 환풍구 뚜껑의 나사를 모두 잘라놔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당시 잘려진 옥상 환풍기 뚜껑
감옥이 훤히 보이는 옥상에서 등대지기에게 발각당할 위험은 있었지만 이 대담한 탈출 경로는 계산에 있던 것이었다.
어느 누가 훤히 보이는 지붕으로 탈출하겠는가? 란 심리를 역이용한 것이다.
탈출범 3명은 장비를 챙겨들고 감옥 건물의 가장 가장자리로 이동했다. 그곳은 경비탑에서 가장 멀어 경비의 시야 밖이었다.
가장자리에 도착한 그들은 벽과 평행으로 설치된 커다란 통풍관을 타고 14m 바닥까지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들은 4m짜리 담장을 넘어 마침내 탈출이 불가능했던 알카트라즈 감옥 빠져나왔다.
3명은 알카트라즈 북동쪽 해안에 도착해 구명보트와 구명조끼에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표는 2.8km 떨어진 아무도 살지 않는 섬 엔젤아일랜드의 해안이었다.
▲엔젤아일랜드 위치
3명은 차갑고 거친 샌프란시스코만에 구명보트를 띄웠다. 여기까지가 그들이 목격된 마지막이었다.
한편 웨스트는 마침내 벽을 통과했다. 복도엔 모리스가 남겨둔 가짜 머리가 있었다.
웨스트는 그것을 침대에 가져다 두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여분의 구명조끼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또 다른 구명보트가 있었다.
지붕까지 올라간 웨스트는 아직 3명을 따라잡을 기회가 있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어두운 바다뿐 3명의 구명보트는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웨스트의 탈출 희망은 사라졌고 여생을 감옥에서 보냈다.
엔젤아일랜드로 향한 3명의 행방은 아직도 알카트라즈 탈출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3명이 탈출한 5일 뒤 FBI 샌프란시스코 사무실에 엽서 한 장이 도착했다.
프랭크 모리스, 존과 클래런스 앵글린 형제 이 3명의 사인과 함께 하하 우리가 해냈다. 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당시 엽서
하지만 카드에 나온 지문과 글씨체 모두 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철저한 수색 끝에 FBI는 모리스와 앵글린 형제가 샌프란시스코만에서 익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구명보트 잔해가 그들이 남긴 유일한 흔적이었기 때문이다.
●탈출한 3명이 샌프란시스코만을 무사히 건넜을지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
3명의 탈옥범들은 알카트라즈에서 엔젤아일랜드까지 헤엄쳐 가려 했다.
탈옥범 3명이 구명보트에 탄 시간은 대략 밤 10시 ~ 11시로 바닷물이 만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해서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른다.
그리고 엔젤아일랜드는 알카트라즈에서 거의 정북 쪽에 위치한다.
바닷물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데 북쪽으로 노를 저어간다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힘든 문제일 것이다.
▲ 조류의 방향 ← / 구명보트 방향 ↑
거기다 물살이 강해서 탈옥수들을 알카트라즈에서 서쪽으로 5km 떨어진 금문교 방향으로 밀어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생각을 바꿔 물살을 거스르지 않았다면 1시간 반 ~ 2시간 후에는 금문교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흐르는 물외에도 바람의 방향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바람은 조류와 반대 방향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고 물살을 거스를 정도로 강했을 수도 있다.
▲바람의 방향 ▷
그들이 바람과 조류 둘 중 어디에 영향을 더 받았는지는 이 질문에 달려있다.
그들은 튼튼한 구명보트 위에 앉아있었을까? 아니면 엉성해서 반쯤 가라앉은 고무보트에 매달려있었을까?
헤엄치는 게 아니라 보트에 타고 있었다면 바람의 영향력이 더 클 것이고 매달려있었다면 조류의 영향력이 더 컸을 것이다.
1962년 6월 밤에 모리스와 앵글린 형제가 마주했던 해양 조건과 동일한 상황에서 해안 경비대 3명이 현대식 고무보트를 타고 잠수용 수영복에 보호를 받고 알카트라즈에서 엔젤아일랜드까지 노를 저어가는 실험을 했다.
조류가 만 밖으로 흐리기 시작하고 엔젤아일랜드로 다가갈수록 더 강하게 고무보트를 금문교 쪽으로 밀어냈다.
건강한 남자 3명이 현대식 보트와 노를 저어 엔젤아일랜드로 가는데 1시간 이상이 걸렸다.
또한 그들은 잠수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3명이 탈옥했던 밤의 바닷물 온도 섭씨 15도를 견딜 수 있었다.
모리스와 앵글린 형제가 이 온도에 1시간 이상 물속에 있었다면 저체온증으로 치명적인 상태에 놓였을 것이다.
그들의 생존 가능성은 매우 낮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든 구명보트는 낡은 우비와 접착제, 실과 바늘로 만들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있었고 헤엄치기에 충분한 근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할 확률은 0%인 것일까?
●또 다른 탈옥 시도
3명이 탈출 사건이 일어난지 6개월 후인 1962년 12월, 어느 폭풍우 치던 밤에 알카트라즈 감옥에서 2명이 탈출했다.
존 폴 스콧과 제럴드 리 파커는 톱으로 창문을 뜯고 탈출했고 절벽을 타고 내려오던 중 제럴드가 다리 골절을 당하면서 낙오됐다.
▲존 폴 스콧 / 제럴드 리 파커
스콧은 수술용 장갑들에 공기를 집어넣고 물에 뛰어들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로 갈려고 했지만 결국 금문교 밑에 바위 아래에서 저체온증으로 인한 쇼크 상태에서 발견됐다.
스콧은 6월보다 더 추운 12월에 헤엄쳐서 알카트라즈를 탈출했다. 역사상 유일하게 성공했지만 그는 발견 즉시 알카트라즈로 되돌려보내졌다.
모리스와 앵글린 형제는 대 탈주에 대한 세간의 관심 때문에 유명인사가 됐고 그들의 이야기는 헐리우드에서 영화화됐다.
그러나 알렌 웨스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고 1979년 사망할 때까지 감옥에 갇혀있었다. 하지만 탈출했던 3명보다 알렌 웨스트의 운명이 더 나은듯하다.
아침에 발견된 고무보트만이 그들이 익사했다는 단서가 된다.
만약에 그들이 생존해서 그 고무보트 조각을 일부러 남긴 것이라면 알카트라즈 탈출 그 자체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더 대단한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