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시도 父 때려 숨지게 한 10대 국민참여재판서 석방

2015년 7월 16일   정 용재 에디터

배심원단, 고심 끝에 징역 8월 집유 2년 의견…재판부도 같은 판단
‘무리한 수사에 무리한 기소’ 도마…검찰 “항소 여부 검토”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자살을 시도한 아버지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10대가 국민참여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다.

배심원과 재판부는 검찰이 적용한 ‘존속상해치사’ 혐의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검찰이 시신의 부검 감정서가 나오기도 전에 자포자기 상태에서 나온 아들의 진술과 시신의 외관만을 보는 검안 보고서 등을 토대로 기소한 것으로 드러나 부실 수사라는 지적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16일 서울남부지법에 따르면 고등학교에 다니다가 가구 시공업체에 취직한 A(19)군은 사실상 ‘소년가장’이었다.

별다른 직업이 없는 아버지(53)는 거의 매일 술만 마시며 허송세월했다. 아버지는 몇 번인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지난 3월 1일 오후 8시께 아버지는 또다시 장롱 꼭대기에 건 줄에 목매 목숨을 끊으려 했다.

A씨는 아버지를 살리려고 매달려 있는 아버지의 엉덩이를 붙잡고 바닥에 던졌다.

그런데도 “죽게 놔둬라. 죽여라”는 아버지의 말에 흥분한 A군은 3∼4분간 10여 차례 아버지를 때렸다.

20여분 뒤 아버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달은 A군은 119에 신고했지만 아버지는 몇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숨졌다. 갈비뼈 12대가 부러져 생긴 중증 흉부 손상 탓이었다.

병원에서 긴급체포된 A군은 밤새 조사를 받으며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고 진술했다.

이후 구속된 A군에게 아버지의 장례식 참여에 허용된 시간은 단 10분이었다.

A군은 절망적인 상태로 수사기관에서 자신이 때려 아버지가 숨졌다는 진술을 반복했고,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후 시간이 흘러 이달 15일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는 A군의 폭행이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적인 원인이었는지가 쟁점이 됐다.

검찰은 A군의 진술과 검안 보고서, 사망진단서 등을 근거로 “A군의 폭행이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군의 국선변호인은 “A군이 목맨 아버지를 내렸을 때 바닥에 떨어진 충격 등 다른 원인으로 갈비뼈가 부러져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있다”고 맞섰다.

A군의 진술에 대해서는 “10대가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 직후 충격에 빠진 상태로 밤샘 조사를 받으며 말한 자포자기 성 진술”이라며 “무리한 수사에 무리한 기소”라고 강조했다.

특히 변호인은 “검찰은 시신을 겉으로만 보는 검안 보고서와 사망진단서, 진술만을 토대로 기소했고 가장 중요한 부검 감정서는 기소된 지 한 달이 훌쩍 지난 4월 29일에야 제출됐다”고 강조하고 “부검의에게는 아버지가 구조 과정에서 바닥에 떨어졌다는 정보도 제공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수의를 입고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던 A군은 최후 진술에서도 “아버지를 숨지게 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선처를 부탁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검찰 측은 A군에 대해 징역 5년을 구형했다.

배심원단은 무려 4시간 가까이 고심했고, 9명 중 2명만이 검찰이 적용한 존속상해치사 혐의를 인정했다.

나머지 7명 중 1명은 존속상해 혐의만 있다고 봤고, 6명은 가장 처벌 수위가 약한 존속폭행 혐의만 있다고 봤다.

양형에 대해서는 만장일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의견이 나왔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2부(조의연 부장판사)도 “A군의 폭행과 아버지의 사망 원인인 사이의 인과 관계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수 없다”며 배심원 판단과 같은 선고를 내렸다.

이로써 4개월 가까이 옥살이를 한 A군은 집행유예 판결로 자유의 몸이 됐다.

검찰 관계자는 “부검 감정서가 늦어져 기소 이후에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이번 경우 혐의 입증과 관련해 문제가 없다고 봤다”며 “판결문을 검토하고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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