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역사상 가장 끔찍한 최악의 범죄사건

2017년 9월 22일   정 용재 에디터

대만 역사상 가장 잔혹하다고 알려진 ‘대만판 여고생 콘크리트 사건’은 어떤 사건일까?

일본의 유명 만화 스토리 작가인 카지와라 잇키와 배우 겸 가수 바이빙빙의 딸로 태어난 바이샤오옌.

그녀는 명배우인 어머니 때문에 TV에도 자주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유명했지만 바이빙빙은 그녀를 유명인의 딸로 키우기보다는 보통 사람처럼 키우려고 노력했다.

1997년 4월 14일 바이샤오옌은 학교에 등교하던 중 7명의 남성들에게 납치된다. 그들은 바이샤오옌을 납치하자마자 폭행, 윤간했으며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잘라 나체 사진과 함께 보내 500만 달러를 몸값으로 요구했다.

바이빙빙은 바로 500만 달러를 준비해 남성들에게 전해주려 했지만, 경찰 관계자가 언론에 정보를 흘려 몸값을 건네주기로 한 장소에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범인들은 몸값 받는 걸 포기, 아지트로 돌아왔다. 아지트로 돌아온 그들은 바이샤오옌을 윤간하고 집단 구타, 잔혹하게 살해한 후 그녀의 시신을 한 하수도에 버렸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지 11일 뒤인 25일 남성들의 아지트를 찾아내지만 주범격인 3명은 도주, 공범인 4명만 체포했다.

4월 28일 바이샤오옌의 시신이 발견됐다. 시신의 광경은 너무 처참했는데 발견자는 사람이 아닌 돼지의 시체로 생각했다고 한다.

부검결과, 사인은 질식사였지만 그 전에 심한 구타로 간장 파열, 과다출혈, 늑골 골절 등 온전한 곳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그녀의 시신을 부검한 법의관이 “많은 시신을 봤지만 이렇게 끔찍한 모습은 처음 봤다”며 크게 충격을 받은 정도였다고.

대만의 일부 언론들은 시신 발견시의 사진을 그대로 보도했고, 이 사진은 일본까지 넘어가 일본 언론들에게도 보도됐는데, 이에 유족들은 크게 분노해 “기자 유죄”라고 적은 플랜카드를 집 앞에 붙였다고 한다.

이 사건을 접한 대만의 국민들은 크게 분노해 도망간 3명의 범인들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리라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에 총통이었던 리덩후이 역시 경찰에게 “범인을 발견하면 무조건 발포해 사살하라”라는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이 때문에 8월 18일 범인 세 명과 경관 800명이 대만 시내 한복판에서 총격전을 벌였으며 경관 두 명이 목숨을 잃게 됐다. 범인 중 한 명은 6발의 총탄을 맞고 자살했다.

다른 범인은 대만의 한 성형외과에 난입해 “자신의 얼굴을 성형하라”고 협박 후, 수술을 마치자 마자 의사 부부를 살해, 간호사는 강간한 후 살해했다. 그 역시 결국 경찰에 발각되었고, 자살을 선택했다.

마지막 범인은 도주를 계속하다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사관의 주재무관 관저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이다 투항하여 체포됐고 1999년 10월 6일 사형이 집행됐다.

이 글을 접한 누리꾼들은 “사이코패스 7명이 어떻게 뭉친거지” “저런것들은 때려죽여도 시원찮다” “상상하기도 무섭다”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 이슈팀 <제보 및 보도자료 editor@postshare.co.kr / 저작권자(c) 포스트쉐어>,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