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저작권으로만 번 ’11억’ 어디로 갔을까

2017년 10월 27일   정 용재 에디터

1923년의 뮌헨 폭동(맥주 홀 폭동)이 실패로 끝나고 반역죄 혐의로 구금 중이던 아돌프 히틀러는 옥중에서 그의 정치적 자서전 ‘나의 투쟁’의 초판을 완성한다.

본래 히틀러가 이 책을 쓰게 된 데에는 자신의 정치적 행보를 기록하기 위함뿐만 아니라 1924년으로 계획된 반역 재판에서 형량을 감면 받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처음 발간되었을 때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이후 이어진 몇 차례의 개정 끝에 나의 투쟁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한다.

책은 16개 언어로 번역되어 히틀러가 사망한 1945년까지 약 8 백만 부가 판매되었다. 히틀러는 책의 인세로만 한 해 백만 달러(한화 약 11억 원)을 벌어들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해외 온라인 커뮤니티 위티피드(Witty Feed)에서는 히틀러가 자신의 정치 자서전 ‘나의 투쟁’으로 벌어들인 인세의 행방이 소개되어 많은 누리꾼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 바이에른 주 정부로의 귀속

2차대전 직후 독일을 점령한 연합군은 나의 투쟁의 저작권을 바이에른 주 정부에 귀속시킨다. 이후 독일 정부는 연구 활동을 위한 제한된 목적을 제외하고는 책의 인쇄를 독일 전역에서 전면 금지한다. 그리고 히틀러가 죽은 지 70년이 지난 2015년 4월 30일, 유럽 내에서의 ‘나의 투쟁’의 저작권이 공식적으로 파기되었다.

물론 히틀러는 나의 투쟁으로 벌어들인 인세를 제외하고도 엄청난 규모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는 베르그호프(Berghof)라는 이름의 바이에른 지역 알프스 산맥에 위치했던 피난처와 뮌헨의 아파트 한 채도 포함되어 있었다.

1945년 4월에 죽기 직전 히틀러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나치 당에 귀속시킨다는 유서를 남겼다. 그러나 나치 당의 해체와 함께 히틀러의 전재산은 그의 주민등록지였던 바이에른 주 정부에 이양되었다.

◆베르그호프(The Berghof)

베르히테스가덴(Berchtesgaden) 산맥 근처의 피난처였던 베르그호프는 종전 직후 이미 연합군의 폭격에 의해 손상된 상태였다. 이 건물은 1952년 독일 정부에 의해 완전히 폭파된다.

베르그호프 폭파 결정은 나치의 잔재가 관광지화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의도였다. 그러나 히틀러의 뮌헨 아파트는 아직까지 남아 지금은 지역 경찰서 건물로 활용되고 있다.

온라인이슈팀 <제보 및 보도자료 editor@postshare.co.kr 저작권자(c) 포스트쉐어> / 사진=Witty F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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