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의 류우(영문명 Charles Woo ryu, 찰스 우 류)는 매일 지속되는 18시간의 강제 노동과 배고픔에 지쳐 길거리에 쓰러졌다.
그 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지난 밤 과음한 북한 군인이 길거리에 쏟아낸 구토였다. 어린 류우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 토를 먹기 시작했다.
최근 영국 일간 미러(Mirror)에서는 어린 나이에 북한을 탈출해 미국으로 망명한 중국계 북한인 찰스 우 류(Charles Woo Ryu, 한국 이름 류우)씨와의 독점 인터뷰가 공개되었다.
지금부터 류우씨가 겪어야만 했던 끔찍한 체험담을 통해서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마주해보자.
◆ ‘북한의 상류층은 밥을 굶지 않는다.’
류우 씨는 중국인 아버지와 북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흔히 말하는 ‘열성 분자’였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에 입대해야 했으며, 그 이후로는 농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려야 할 운명을 타고난 것이었다.
좋은 옷을 입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평양의 상위 계층과 달리 그와 같은 열성분자들은 하루하루 생존의 위협을 느껴야만 했다.
실제로 처지를 비관한 그의 이웃 중에서는 돼지고기에 쥐약을 타서 가족들과 함께 자살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 ‘군인들은 반동 분자에게 90발을 쐈다.’
열세 살이었을 무렵 류우 씨와 친구들은 함께 동네 야산에서 공개 처형 장면을 강제로 보게 되었다.
당시 군인들은 남한 간첩 혐의를 받은 남성을 나무에 묶어 목과 등, 무릎 부분에 나누어서 총 90발의 총알을 쐈다고 한다. 총성이 멎고 남성의 몸은 말 그대로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살이 찢겨 나가 뼈가 보이기도 했다.
◆ ‘그들은 벽에 묻은 피를 물로 씻어냈다.’
열네 살의 류우 씨는 중국인 아버지의 도움으로 중국으로의 탈출에 성공했다.
중국에서 그는 난생 처음으로 원하는 음식을 먹고 보고 싶은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의 경험이 ‘황홀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얼마 가지 않았다. 중국 공안은 중국 내의 북한이탈주민을 신고할 시 500 위안(한화 약 8만 원)의 포상금으로 사례한다.
류우 씨 역시 단돈 8만 원을 노린 신고로 적발되어 다른 수백여 명의 북한이탈주민들과 함께 북한으로 다시 송환되어야만 했다.
류우 씨는 아직도 심문실에서 들을 수 있던 옆 방의 비명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한다. 그곳의 북한 군인들은 피로 젖은 벽을 물로 씻어냈다.
◆ ‘너무 배가 고파서 돌까지 씹어 먹을 정도였다.’
어린 아이였기에 죽음은 면할 수 있었으나 류우 씨는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수용소에서 그는 매일 같이 18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으며 배급 받은 음식은 사료용으로 쓰이는 소량의 옥수수가 전부였다.
배고픔과 피로로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른 류우 씨를 발견한 수용소 감독은 그를 다시 집으로 돌려 보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남게 된 것이었다.
◆ ‘이것이 평화고 이것이 바로 자유였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류우 씨는 생존을 위해서 근처의 탄광에서 일을 해야만 했다.
탄광에서의 노동 역시 고달프기는 매한가지였다. 매일 같이 소량의 음식만을 배급 받으면서 힘든 노동을 해야 했으며 옆에서는 동료들이 돌에 짖눌려 다치거나 죽어나갔다.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한 류우 씨는 다시 한번 중국으로의 탈출을 감행해 성공했다.
그의 아버지는 전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를 미국에 난민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현재 미국 LA에서 북한 주민 인권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류우 씨는 “양부모님과 함께 평화로운 식사를 즐길 때마다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런 순간 나는 이게 진정한 평화고 자유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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