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과거시험 난이도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난이도는 어느정도였을까?

유교를 정치 이념으로 가지고 있던 한국과 중국, 베트남 지역 등에서 고위 관직 진출을 위해서 이루어졌다는 과거 시험.

중국에서는 수나라 시대에 최초로 시행되었으며, 한국은 고려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졌다.

고려 광종 9년 때 처음 시행되었다는 과거 시험. 하지만 고려시대의 과거 시험은 ‘지공거’라는 문제점이 있었으며 이 때문에 과거제도가 황폐해졌다.

지공거였던 사람이 낙향해 제자들을 가르치고, 그 제자들이 새로운 지공거에게 시험을 보는 등의 사이클이 생겨 폐단이 끊이지 않았던 것.

하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고려시대의 문제점을 대폭 개선한 과거제도가 시행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지역균형과 능력주의가 절묘하게 섞인 합리적인 제도로 발전하였으며, 소과에서 각 도별로 할당된 인원을 먼저 뽑은 뒤에 대과에서 점수로 줄을 세워 최종 합격자를 가렸다.

고위 관직을 뽑는 시험인만큼 난이도와 경쟁률은 상상을 초월했다. 전국에서 모인 수만 명의 응시자 중 소과 복시에서 200명만 뽑았으며, 대과 복시에서는 그 200명 중에서도 33명만을 뽑았다고.

과거시험은 논술형으로 진행되었으며 조선시대 때 출제된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세종 때 과거시험 문제

“땅이 있고 백성이 있으면 염치를 기르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노비제도는 어느 대에 시작하였는가?
노비 또한 하늘이 내린 백성인데 그처럼 대대로 천한 일을 해서 되겠는가?
어느 집안은 노비가 많은 경우 수천, 수백인데 한계를 둘 수 없는가?

예전에는 문반과 무반의 관직이 있으면 관직에 따른 토지가 있었다.
지금은 과전에서 시관과 산관을 구별하지 않는 것은 어떤 법을 취한 것인가?
대저 임금의 순수(순행)를 순임금은 5년마다 주나라는 12년마다 하였는데 지금은 5~6일 사냥하는 행차가 있어도 폐해가 있으니 그 까닭은 무었인가?

도읍을 두개 건설 하는 것은 어떤 뜻이 있는가?
의창은 장차 백성을 구휼하기 위해 설립하였다. 잇달아 가뭄이 들때마다 백성이 굶주림을 근심하는데 의창의 곡식으로 아직 능히 구휼 못하니 그 까닭은 어째서인가?”

중종 때 과거시험 문제

“술이 화(禍)가 된 지는 오래이다. 그 근원은 언제부터인가? 우왕이 맛있는 술을 미워했고, 무왕이 술을 경계하는 글을 지었고, 위 무공이 술 때문에 저지른 허물을 후회하여 시를 지었다. 술의 화에 대해 크게 염려했으면서도 모두 그 근원을 끊지 못했으니 어째서인가? 후대 임금 중에서도 술 때문에 망한 사람들이 많은데, 하나하나 열거하여 말할 수 있는가? 우리 조정의 여러 훌륭하신 임금께서도 서로 계승하여 술을 경계하셨다. 세종대왕께서 글을 지어 조정과 민간에 유시하신 것은 세 성인의 견해와 다름이 없다. 그런데도 아랫사람들이 음주를 숭상하는 것이 오늘날 더욱 심해져 어떤 자는 술에 빠져 일을 폐하고, 어떤 자는 정신이 혼미해져 덕(德)을 무너뜨린다. 흉년을 당하여 금주령을 내려 막아도 민간에서는 술 빚는 것이 끊어지지 않아 곡식이 거의 없어질 지경이다. 이를 구제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하겠는가?”

광해군 때 과거시험 문제

“군대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인데, 군사를 더 이상 충원할 수가 없다. 식량은 백성이 하늘로 삼는 것인데,
양식을 수송하는 길은 모두 훼손되고 없어졌다. 기본적인 생산수단이 붕괴되자, 민심마저 뿔뿔이 흩어져버렸고, 정부가 혜택을 강구하지 못하니,
도적들이 마구 일어나고 있다.

또 기강이 해이해져서 일꾼들이 일터를 모두 잃어버렸고, 행정 명령이 문란하고 현실에 어긋나 정치에 필요한 법령과 예악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조세의 종목도 너무 많아, 가혹한 세금징수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고을이 점차 황폐해지는데도, 부역은 점점 가중되고 있다.
기계와 장비는 무뎌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고, 군사적인 대비는 너무나 소홀하다. 아무리 성을 쌓고 못을 깊이 파놓아도,
죽음을 각오하고 지킬 사람이 없다. 게다가 남방의 바닷가는 텅 비어 주민이 없고, 해적만 끊임없이 틈을 엿보고 있다.
북쪽 변경의 여러 진은 텅 빈 장부만 붙들고 있고, 오랑캐는 날마다 노략질을 하고 있다.
이런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생각을 하지만 방법을 모르겠다.

잘 다스리고자 하는 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고, 성급하게 추진하기만 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갖가지 행정체계는 갖추어져 있지만, 실효가 아직 드러나지 않아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나라가 이미 쇠퇴기에 접어들어서, 도저히 만회할 수 없기 때문인가? 폐단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상세히 말해보라.

오래 묵은 폐단을 혁신하고 세상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나 한의 성대한 시대처럼 만들되,
진이나 송의 말기처럼 비루한 처지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어떤 방법을 따라야 하는가?
실력을 갖추고서 때를 기다리는 그대들은 시대의 어려움을 구제할 높은 식견과 탁월한 견해를 갖고 있을 테니, 대책에서 모두 펼쳐보라. ”

숙종 때 과거시험 문제

“울릉도가 멀리 동해에 있는데 강원도에 속해 있다. 수로가 멀고 험해 섬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현재 비어 있다.
요즘 일본인이 죽도(竹島)라 부르면서 백성들의 어로 활동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우리 입장을 설명해도 (일본은) 들을 생각이 없다.
혹자는 장수를 보내 점거해 지키자고 하고, 혹자는 혼란을 만들지 말고 일본인의 왕래를 허용하자고 하는데,
변방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해 자세히 나타내도록 하라.”

 

과거시험 최연소 급제자는 15세 이건창 (1866)이었으며 최연소 장원급제자는 17세 박호 (1584)였다.

이율곡은 과거시험 최고의 천재로 불리는 인물인데, 그는 22세부터 과거시험에 9번 응시하여 9번 모두 장원급제하는 엄청난 능력을 보였다.

특히 1556년 별시에서 당대 학자 수백명이 몇 달을 고심하여 만든 문제를 단 3시간 만에 답안을 작성하기도 했다고.

대부분의 장원급제자들의 답안지는 평균 길이가 10m 였으며, 앞면은 물론 뒷면까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안녕하시현 에디터 <제보 및 보도자료 editor@postshare.co.kr 저작권자(c) 포스트쉐어,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사진 = 연합뉴스, 드라마 ‘비밀의 문’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