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NA법 5년> ② 스리랑카인 여대생 집단 성폭행 진실 13년후 확인

2015년 7월 23일   정 용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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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절도·강도·강간·추행 범인 검거에 특효
4년간 DNA로 4천200건 범인 특정…공소시효 직전 사례도 다수

 

(서울=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 1998년 10월 17일 오전 5시 10분께 당시 18살이던 대학생 정은희양이 구마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인근에서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이 사건은 술에 취한 정양이 고속도로에 나왔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으로 종결될 뻔했다. 하지만 정양은 끔찍한 집단 성폭행에서 벗어나려다 변고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양의 억울함을 밝혀준 것은 2010년 시행된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DNA법)이다.

대구지검은 2011년 청소년에게 성매수를 권유한 혐의로 스리랑카인 K(48)씨를 붙잡아 DNA를 점검했다. 그 결과 K씨가 1998년 교통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정양의 속옷에서 나온 DNA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마침 2010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이 제정되면서 DNA가 확보된 성범죄의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연장돼 시효문제도 해결됐기에 검찰은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다.

수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경찰이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한 사건은 학교축제에서 귀가하던 정양을 K씨와 다른 스리랑카인 2명이 집단 성폭행한 사건으로 바뀌었다. 정양은 인근 논밭에서 성폭행당하고 도망치다 방향 감각을 잃은 채 고속도로에 들어섰다가 차에 치여 숨진 것이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그러나 현장에 떨어진 정양의 속옷에서 채취한 DNA는 13년 후에도 이 사건의 진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 사건은 DNA법의 효과를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 DNA법으로 매년 1천여건 해결…장기 미제사건도

DNA법은 영구 미제사건으로 묻힐 뻔한 사건을 해결하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대검찰청과 경찰청 통계로는 법이 시행된 2010년 7월부터 작년까지 DNA법으로 해결된 사건은 총 4천252건(검찰 1천482건, 경찰 2천770건)에 달한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DNA와 수형인, 구속 피의자의 DNA가 일치해 범인으로 확인된 사례다.

시행 첫해인 2010년 214건으로 시작해 2011년 1천343건, 2012년 1천237건, 2013년 787건에 이어 작년은 671건이었다.

2010년 7월 법이 시행된 이듬해 ‘일치’ 실적이 정점을 찍었다. 누적된 장기 미제사건이 무더기로 해소된 덕에 그 이후에는 감소세로 반전했다.

죄종 별로는 절도·강도가 2천984건(70.2%)으로 비중이 가장 높았다.

강간·추행 792건(18%),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78건(1.8%),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68건(1.6%) 등이 그 다음 순이었다.

절도·강도, 강간·추행 등 재범률이 높은 사건에서 실적이 우수했다. 범죄 재범을 방지하고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한다는 이 법의 입법 취지가 제대로 작동됐음을 보여준다.

DNA 데이터베이스는 아무리 오래된 범죄라도 언젠가는 해결된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범죄를 예방하는데도 큰 효과를 갖는다.

◇ DNA법 무서워 범죄 실토…미세 혈흔으로 범인 지목

DNA법은 세간의 이목을 끈 대형 사건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하는 데도 특효를 보였다.

그러다 보니 범죄자가 DNA법이 무서워 범죄를 순순히 실토한 사례도 있다.

2011년 대구지검 의성지청은 1998년 11월 인천 부평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화장실 앞에서 A(당시 19세)양을 성폭행하고 목 졸라 숨지게 한 혐의로 B(33)씨를 기소했다.

B씨는 2000년 강도상해죄로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DNA 시료 채취 대상으로 분류되자 교도관에게 범행을 털어놨다. 공소시효 만료를 불과 2년 앞둔 시점이었다.

DNA법이 아니었으면 계속 미궁에 머물렀을 사건은 수두룩하다.

2012년에는 6년 전 발생했던 특수절도 사건의 피의자를 ‘혈흔 한 방울’로 해결했다.

신모(26)씨 등은 2006년 6월 경기도 평택 게임장 환전소에 유리창을 부수고 침입해 현금 2천700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경찰은 현장감식 때 신씨 등이 유리창을 깨면서 남긴 혈흔 한 방울을 보관했다. 이 혈흔의 DNA는 6년 뒤인 2012년 강제추행 혐의로 서울 강북경찰서에 입건된 신씨의 DNA와 일치했다.

경찰은 공소시효 만료 10개월을 앞두고 신씨와 공범 3명도 모두 붙잡아 장기 미제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다.

법이 시행된 첫해인 2010년에는 오리무중인 살인사건이 3년 9개월 만에 해결되기도 했다.

법 시행 3개월 만인 그해 11월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2007년 2월 여관에서 장기투숙객 이모(68)씨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노숙자 김모(26)씨를 붙잡았다.

경찰이 2년간 수사전담반을 편성해 수사했지만, 소득이 없었던 이 사건을 해결한 것은 DNA법이었다.

김씨는 강도상해죄로 3년6개월을 복역하고 출소하기 전 DNA 채취에 응한 덕분이었다. 이 시료와 사건 당시 현장에 버려진 담배꽁초 DNA가 일치한 것이다.

다시 검거된 김씨는 경찰이 내민 DNA 분석 결과를 보고 순순히 범행을 시인했다.

2vs2@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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