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끝까지 ‘아이폰’으로 촬영한 막장 영화

송시현 기자 2018년 6월 29일 입력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막 출소한 트랜스젠더 여성 신디(키타나 키키 로드리게즈 분)는 단짝 알렉산드라(마이아 테일러)의 말 한마디에 눈이 뒤집힌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남친 체스터가 ‘진짜’ 여자와 놀아났다는 것.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전날이다.

션 베이커 감독의 영화 ‘탠저린’은 처음부터 끝까지 ‘막장’ 드라마다. 이성을 잃은 신디는 이니셜 ‘D’라는 단서 하나만 들고 온동네를 헤집는다. 체스터의 주변 인물들을 윽박지른 끝에 결국 다이나(미키 오하간)를 찾아낸다. 그리고 또, 다이나의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로 체스터를 찾아 동네를 휘젓는다.

흑인 특유의 속사포 말투를 구사하는 인물들의 대화는 욕설과 비속어 한두 개쯤 섞지 않으면 이어지지 않는다. 신디가 로스앤젤레스 시내를 뒤집고 다니는 동안 알렉산드라는 저녁에 준비한 공연을 홍보하러 다닌다. 그러면서 길거리 성매매로 돈도 번다. 다이나 역시 모텔에서 ‘일’을 하다가 신디에게 끌려 나왔고, 체스터는 포주다.

성매매와 마약으로 일상을 이어가는 뒷골목의 삶이 누군가에겐 선택이 아닌 필연이라고 말하는 듯도 하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진지하고 근엄하게 제시하는 방식은 아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블랙 유머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 빠른 비트의 음악, 속도감 있는 장면 전환은 외부인의 시선교정 따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는다. 인물들 사이에 트랜스젠더로서, 여성으로서 연대감이 언뜻 묻어나지만 무게감이 과하진 않다.

오히려 이들과 번갈아 등장하는 아르메니아 출신 택시운전사 라즈믹(카렌 카라굴리안)의 메시지가 전형적이다. 신디가 감옥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라즈믹은 크리스마스 이브 한자리에 모인 가족에게 거짓말을 하고 집을 나선다. 이민자의 ‘아메리칸 드림’은 뒷골목 트랜스젠더의 불투명한 삶에 기생하고 있었다. 라즈믹의 장모를 포함한 등장인물들이 모두 모인 도넛 가게에서 그 위태로운 꿈에 금이 간다.

캐릭터와 설정만 놓고 보면 한 동성애자 소년의 성장 궤적을 추적한 ‘문라이트’의 소수자성을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서정성을 B급 유머로 대체한 버전 정도로 읽힌다. 그러나 ‘문라이트’에 앞서 2015년 제작된 이 영화는 한발 더 나아간다. 모든 장면을 아이폰 5S로 찍었다.

아이폰 카메라는 택시 조수석에서 운전석과 뒷자리를 훑고, 신디와 알렉산드라의 뒤를 빠른 걸음으로 쫓는다. 아이폰이 흡수한 자연광은 영화 제목이 가리키는 대로 화면을 오렌지색으로 물들인다. 유려한 영상미는 아니지만, 우연에서 비롯된 근사한 효과도 만들어낸다. 아이폰의 기동성은 막장 드라마를 총정리하는 비좁은 도넛 가게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신디와 알렉산드라 역을 맡은 주연 배우들은 이전까지 연기 경험이 없던 실제 트랜스젠더다.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센터에서 ‘길거리’ 캐스팅됐다. 자신과 주변의 경험을 에피소드에 반영했다고 한다. 아이폰 촬영은 이들의 리얼리티를 돋보이게 하면서 다소 어색한 연기를 보충한다.

평소 접하기 힘든 소재나 영화를 대하는 혁신적 태도에 관심있는 관객이라면 환영할 만한 영화다. 그러나 캐릭터와 표현 수위 모두 센 편이어서, 성소수자에 편견을 가졌다면 88분의 짧은 러닝타임이 괴로울 수 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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