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전과자가 장애인 가족에게 ‘동생’이라며 접근한 이유

송시현 기자 2018년 7월 5일 입력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식구는 한자로 ‘食口’라고 쓴다.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함께 먹고 자며 혈연으로 맺어진 이 공동체는 구성원에게는 가장 살가운 단위지만 그 밖의 존재에게는 지극히 배타적이다.

낯선 이가 강제로 울타리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면 구성원의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구성원이 저항할 수 없는 처지라면 어떨까. 불청객이 밥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같은 방에서 잠을 잔다면 극도의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을 터다.

12일 개봉하는 임영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 ‘식구’는 이 같은 상상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사기죄로 복역하다 막 출소한 ‘재구'(윤박 분)는 형에게 연락하지만 형은 ‘네가 날려 먹은 어머니 보험금으로 장례 치러드렸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는다.

가족에게 버림받은 재구는 공사판과 장례식장 등을 전전하다 술에 취한 ‘순식'(신정근 분)을 발견하고 의도적으로 접근해 그의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다.

지적장애인 ‘순식’의 식구는 마찬가지로 지적장애가 있는 아내 ‘애심'(장소연 분)과 7살 딸 ‘순영'(고나희 분)뿐이다. 순식은 애심과 함께 공장에서 일하며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재구’는 사기꾼 기질을 발휘해 순식의 동생 행세를 하며 그의 집에 머무른다. 순식과 애심에게는 장애인이 아이를 키우는 사실이 발각되면 경찰에 잡혀간다며 신고할 수 없도록 거짓말을 한다.

어느새 순식의 집에 한 자리를 차지한 재구는 차츰 폭군이 돼 간다.

‘식구’는 임 감독이 장애인으로부터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다. 영화를 관통하는 두 가지 큰 주제는 소외된 사람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과 재구의 양면성이다.

임 감독은 “‘식구’는 소외된 사람을 바라보는 세상의 편견에 대한 이야기”라며 “엔딩에서 순식이 소리치는 장면을 가장 신경 써서 찍었다. 순식의 외침은 사실 관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순박하고 영화 내내 억눌린 모습을 보이던 순식은 엔딩장면에서 몰려든 이웃 주민에게 “우리 바보 아닙니다. 다 나가요. 순영이 잘 키울 수 있어요. 우리끼리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라고 외친다.

재구의 양면성은 영화를 풍부하게 하는 한편, 관객에게 고민의 여지를 남긴다.

임 감독은 영락없는 범죄자인 재구마저도 소외된 사람으로 묘사한다.

그는 “재구라는 캐릭터는 등장인물 중 가장 소외된 사람일 것”이라며 “전과자는 사회에서 보호해주는 부분이 전혀 없다. 재구는 순식의 집에 들어와 새로운 인생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재구는 순식의 집에서 멋대로 행동하고 돈을 강탈하는가 하면 7살 순영을 대상으로 소아성애자에 가까운 면모를 드러낸다.

무단침입, 사기, 강도, 아동성범죄까지 저지르는 범죄자지만 재구는 ‘바보 딸’이라고 놀림을 받는 순영을 위해 나서는가 하면, 술에 취해 ‘나도 형이 있다’고 외치는 등 때로는 진심으로 순식의 식구가 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내기도 한다.

하루 이틀 순식의 집에 머물수록 재구는 새로운 출발을 할 수도 있겠다는 기대와 함께 순식의 가족을 이용해 편히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모두 품게 된 것이다.

재구를 비추는 카메라에는 분명 임 감독의 동정적인 시선이 깔렸다. 재구의 행동은 관객을 분노하게 하지만 가끔씩 내비치는 양면성이 이를 희석한다. 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두고 관객은 고민하게 된다.

2015년 겨울 촬영한 작품으로 제26회 애리조나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외국 영화상, 제2회 시네마 뉴욕시티 필름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장편 영화상을 수상한 뒤 3년 만에 정식으로 개봉한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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