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침까지” 한현민이 어린시절 겪은 인종차별

2018년 7월 13일   정 용재 에디터

모델 한현민이 들은 말 “까만 애랑 놀지마”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중학교 3학년 열여섯 나이에 프로 모델로 데뷔한 한현민은 지난해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에 꼽히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아직 만 18세 청소년이지만, 지금까지 특별한 삶을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쓴 논픽션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아시아)가 출간됐다.

이 책에는 그의 출생부터 어린 시절, 모델의 꿈을 갖고 키워온 여정이 소설처럼 흥미롭게 그려졌다. 김민정 작가가 한현민과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팩션’ 형식으로 썼다.

책의 앞부분에는 나이지리아 출신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그가 한국에서 태어났음에도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아주 어릴 때부터 차별과 혐오의 시선을 받은 가슴 아픈 기억들이 나온다.

유치원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그에게 아이들은 모래를 뿌리거나 장난감을 던졌고, 얼굴에 침을 뱉은 아이들까지 있었다.

어렵게 친해진 친구의 엄마는 유치원에 와서 “까만 애랑 놀지마”라며 친구를 끌고 가기도 했다. 순진무구한 어린아이가 사회와 어른들의 뒤틀린 편견 탓에 일찍부터 절망을 경험해야 했던 이야기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함께 중국집에 갔다가 어떤 아이로부터 “시커먼 애가 자장면을 먹고 있네”라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중국집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그에게 쏠렸고, 아무도 무례한 행동을 한 아이를 꾸짖거나 야단치지 않았다. 철없는 녀석의 한마디 말보다 자신을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더 큰 상처로 남았다고 그는 떠올린다.

수학여행은 그에게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 중 하나다. 그나마 같은 학교 아이들은 자신을 다 아는데, 외부 활동을 나가면 여러 지역에서 온 수백 명의 눈이 그에게 쏠렸다.

지하철에서는 술 취한 아저씨가 갑자기 다가와 “웨얼 아유 포럼?”이라며 시비를 걸고, 어떤 할머니는 갑자기 다가와 다짜고짜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남의 나리에서 뭘 하는 게야?”라고.

그런 아픔 속에서 그를 지탱시켜준 것은 어머니와 가족들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늘 그에게 “너는 특별한 존재야. 언젠가는 이 피부색이 너한테 좋은 일을 해줄 거야”라고 말하며 무한한 사랑을 줬다.

그런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그는 돈이 많이 드는 야구선수의 꿈을 포기하고 한동안 방황했다. 그러다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옷에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조심스럽게 모델의 꿈을 키우기 시작해 유튜브를 보며 혼자 공부하고 연습한다. 그 와중에 모델이 되게 해주겠다는 사기를 두 차례 당하고 ‘흑인 모델은 안 쓴다’는 냉대를 당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모델의 꿈을 이뤘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도 재미있고, 커피를 좋아해 바리스타 공부도 해보고 싶고, 순댓국을 워낙 좋아해 순댓국밥집을 차려보고 싶다고 한다. 또 모델로 열심히 활동해 다문화 사회의 좋은 롤 모델이 되고, 훗날 재단을 설립해 자신과 비슷한 배경의 친구들을 지원해주고 싶다는 꿈도 있다.

이 책은 출판사 아시아가 기획한 인물 스토리텔링 논픽션 ‘이 사람’ 시리즈 첫 작품이다. 앞으로 장강명 작가가 만난 북한이탈주민 지성호, 정지아 작가가 들려주는 한국 근대 최초 여성 소설가 김명순, 이승우 작가가 만난 ‘프로방스 사람들’, 박민규 작가가 만난 ‘보통 사람’, 김응교 작가가 만난 일본 작가 미야자와 겐지 등이 이어질 예정이다.

mina@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