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2학년 때 만든 ‘첫’ 작품으로 칸 데뷔한 감독

2018년 7월 20일   정 용재 에디터

(칸<프랑스>=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경마장 공중화장실에 말끔한 양복을 입은 한 사내가 서 있다. 벽에는 신용대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먹다 남긴 컵라면과 쓰레기가 뒹군다.

이 남자는 갑자기 스티커를 하나하나 떼어내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오물이 넘쳐흐르는 변기에 직접 손을 넣어 뚫기 시작한다.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단편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모범시민'(김철휘 감독)의 내용이다.

비평가주간은 칸영화제 공식 부문과 별도로 운영되는 섹션으로, 1~2번째 영화를 만든 신인감독을 대상으로 한다. 올해는 총 10편이 선정됐다.

‘모범시민’은 김철휘(24) 감독이 동국대 전산원 영화학과 2학년 때 만든 첫 작품이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칸 현지에 있는 김 감독에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무엇보다 화장실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궁금했다.

“처음 아이디어는 공중화장실을 갔을 때 변기 뚜껑이 닫혀있는 것을 보면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든다는 데서 착안했어요. 이야기를 발전시키려 여러 곳을 돌아다녔는데, 경마장 분위기가 흥미로웠습니다. 굉장히 잘 꾸며뒀는데, 그곳에 있는 분들은 상당히 예민하고 뭔가에 광적으로 빠져있는 모습들이었거든요.”

영화는 11분 52초짜리 분량이지만, 인간의 행동에 관한 날카로운 고찰이 들어있다. 공중화장실을 직접 치우는 주인공이 실제 모범시민인지는 알 수 없다. 그의 정체는 마지막 반전을 통해 드러난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사실 알고 보면 (공익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감이나 이익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이 부분은 관객이 자유롭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는 서울 도심의 한 아파트 상가 화장실에서 찍었다. 원래는 깨끗한 화장실인데 미술 세팅을 해 낡고 지저분한 화장실로 둔갑시켰다. 그 때문에 촬영 2회 만에 상가에서 쫓겨나 다른 화장실을 찾아야 했다고 한다. 예산은 500만 원이 들었고, 3회차 만에 촬영을 끝냈다.

저예산 영화지만 오디션을 통해 윤세현을 캐스팅했다.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출신인 윤세현은 그동안 조·단역으로 활동해온 배우다.

김 감독은 “주인공이 어떤 인물이라는 느낌을 드러내기보다 단지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원했다”면서 “윤세현을 보자마자 제가 생각한 이미지와 비슷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칸에서 각종 상영회와 인터뷰 등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그는 “처음에는 관광한다는 느낌으로 왔는데, 생각보다 일정이 많았다”면서 “이 기회를 활용할 수 있었는데, 준비를 많이 못 해 와서 아쉽다”고 토로했다.

김 감독은 데뷔작으로 칸을 밟은 만큼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된다. 그는 “말하기 부끄럽다”면서도 “앞으로 제 태도가 분명히 드러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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