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무명생활 끝에 ‘러시아 영화’로 칸 영화제 진출한 한국 배우

송시현 기자 2018년 8월 2일 입력
						
						

(칸<프랑스>=연합뉴스) 조재영 기자 = 배우 유태오(37)가 생애 처음으로 칸영화제에 진출하며 15년 무명의 설움을 씻었다.

13일(현지시간) 칸 현지에서 만난 유태오는 “오랫동안 무명의 길을 걸었는데, 이런 꿈같은 자리에 오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활짝 웃었다.

유태오는 경쟁 부문에 초청된 러시아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 신작 ‘레토’에서 주연을 맡았다. 1980년대 초반 러시아의 전설적인 록스타 빅토르 최의 젊은 시절을 담은 영화로, 최근 공식 상영 이후 호평이 쏟아졌다.

유태오는 2천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뚫고 빅토르 최 역할을 따냈다.

“지인을 통해 키릴 감독이 한국 배우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별 기대 없이 ‘셀카’ 사진을 찍어 보냈죠. 그러고는 일주일 뒤에 기타 치는 영상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어요. 이번에는 집 주차장에서 러시아 분위기가 나게 영상을 찍어 보냈는데, 모스크바로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죠.”

유태오는 키릴 감독이 내세운 조건과 맞아 떨어졌다. 한국인인 데다 20대 초반을 연기할 수 있는 동안을 지녔고, 연기경험도 갖췄다. 무엇보다 빅토르 최에 대한 유태오의 해석이 감독 마음을 움직였다.

“빅토르 최는 남성의 상징, 자유의 상징으로 인식돼 있지만, 제가 보기엔 좀 달랐어요. 그의 노랫말을 보면 시적인 요소가 강했고, 정체성에 관한 혼란과 멜랑콜리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죠.”

유태오가 해석한 빅토르 최의 모습은 사실 본인 이야기이다. 그는 1981년 독일 쾰른에서 독일 파견 광부와 파독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저 역시 떠돌아다니는 삶에 대한 멜랑콜리와 나의 뿌리가 무엇인지, 유럽 교포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에 출연하게 된 건 운명 같아요.”

어렵게 잡은 기회였지만 촬영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는 러시아에 도착해서야 모든 대사를 러시아어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촬영을 불과 3주 앞둔 시점이었다.

“3주 동안 호텔 방에서 시나리오를 장면별로 나누고, 다시 문장으로 나눠서 입에 붙을 때까지 연습했어요. 단어를 한 시간에 100번쯤 반복했죠. 노래도 한 곡만 부르는 줄 알았는데, 아홉 곡을 모두 외워야 했어요.”

그는 두 번째 촬영 때 450명 보조출연자 앞에서 공연 장면을 찍어야 했다. “그때 긴장해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영화를 보면 3주 만에 연습한 러시아어와 노래 실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영화는 데뷔 음반을 내기 전인 빅토르 최가 그룹 키노로 활동하다 그의 우상인 마이크와 그의 아내 나타샤를 만나면서 음악 인생이 달라지는 과정을 그린다. 유태오는 로맨스를 포함해 외로움과 공허함, 음악적 고뇌까지 세밀한 감정 연기도 펼쳤다.

영화는 완성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무엇보다 촬영 종료 일주일 전에 키릴 감독이 갑자기 가택연금을 당했다.

“희망이 사라지는 듯했어요. 제가 계속 ‘무명인생을 살아야 하나’ 하는 절망감도 들었죠.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감독님이 만족하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죠.” 유태오는 간절한 마음에 빅토르 최의 무덤에 직접 찾아가 꽃을 놓은 뒤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학창시절 농구선수였던 그가 연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건 스물한 살 때다.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은 그는 미국으로 홀로 떠났고, 리 스트라스버그 연기학교에 들어갔다. 그가 평소 좋아하던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등 대배우들이 다닌 곳이다. 그는 그때 연기를 배우면서 “연기가 나에게 찾아온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유태오는 2009년 ‘여배우들’로 한국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태국, 베트남, 중국, 할리우드 영화들에 출연했지만, 이름을 알리지는 못했다. 그런 그를 옆에서 한결같이 응원해준 사람은 10여 년 전 뉴욕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 니키 리(이승희) 씨다. 니키 리 씨는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한 유명 미술작가다.

“모두가 절 버리고 포기했을 때, 제가 배우 생활을 할 수 있게 끝까지 믿어준 아내가 너무 고마울 따름입니다.”

fusionjc@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