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아버지가 눈사태로부터 가족을 구하는 가슴 찡한 감동은 없고, 눈사태가 가족에게 예상치 못한 정신적 재난을 몰고 온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늘 일에 쫓기는 남편 토마스(요하네스 쿤게 분)는 아내 에바(리사 로벤 콩슬리)와 어린 딸, 아들과 함께 오랜만에 알프스 산맥으로 스키 휴가를 떠난다.
토마스 가족이 야외 식당에서 점심을 즐기는 순간, 거대한 눈사태가 이들을 덮친다.
상황이 종료된 다음 정신을 차린 에바는 아이들을 끌어안은 채 남편을 찾는다. 하지만 스키 장갑과 아이폰을 먼저 챙기던 남편은 온데간데없다.
에바는 이후 눈먼지를 털며 ‘멀쩡하게’ 나타난 토마스에게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다. 토마스는 에바가 당시 상황을 다르게 기억하는 것 같다면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피한다.
휴가가 점점 끝나가지만 모두의 상처는 점점 깊어만 간다.
‘포스 마쥬어’는 통제하거나 저항하기 어려운 본능의 강력한 힘을 뜻한다.
사회가 기대하는 아버지의 역할을 내팽개친 것만으로도 모자라 당시 상황을 부정하는 토마스가 처음에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철저한 본능에 따라 움직였고 이를 치부로 받아들이며 괴로워하는 토마스의 모습을 계속 지켜보다 보면 나 자신부터 저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아버지의 상(像)이나 부성애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에 이르게 된다.
세상 모든 엄마가 에바처럼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식들을 보호할지는 의문이다. 에바도 훗날 또 다른 위기가 닥쳤을 때 같은 행동을 할지 확신할 수 없다.
영화는 토마스가 다시 찾아온 위기의 순간에 영웅으로 거듭난다든가 하는 식의 대단한 결말 대신 깔끔한 결론을 내린다.
영화는 초반부부터 거대한 산사태를 등장시킨데다, 극한으로 끌어올려 연주한 듯한 비발디 ‘사계’ 여름 3악장 ‘폭풍’을 배경 음악으로 깔아 긴장감을 이어가는 데 성공했다.
‘미치도록 재미있다’, ‘최고의 코미디 영화’라는 외신 평가에는 동의하긴 어렵지만 소소한 웃음이 터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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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사진 = 영화 ‘포스마쥬어 – 화이트 베케이션’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