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영화 촬영 현장에 진짜 ‘좀비’가 나타난다면?

송시현 기자 2018년 8월 10일 입력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관객들의 얼굴에 짜증이 묻어난다. ‘시사회라 다행이다. 돈 내고 볼 영화는 아니네’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10분 정도 지나자 짜증을 넘어 어처구니없는 지경에 도달한다. 이쯤 되니 객석 곳곳에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는 자칭 ‘좀비 호러’ 영화다.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창고 안에서 좀비 영화 촬영이 한창이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격해진 감독이 현장을 떠나고 그 순간 진짜 좀비 떼가 나타나 배우와 스태프를 공격한다.

스태프들은 하나씩 좀비로 변해가고, 남·여 주인공과 분장사 아주머니는 좀비의 공격을 피해 달아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시놉시스다.

그런데 CG로 공룡을 되살리고 저승세계도 만들어내는 마당에 대학 영화 동아리 수준의 좀비 분장은 도저히 눈 뜨고 못 볼 지경이다.

게다가 플롯을 생각하고 만들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맥락 없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남자 주인공은 뜬금없이 분장사 아주머니에게 취미를 물어보는가 하면, 머리에 도끼를 맞고 쓰러진 분장사 아주머니가 벌떡 일어나 멀뚱멀뚱 카메라를 쳐다본다.

도가 지나친 ‘발연기’를 선보이는 여자 주인공 앞에 난데없이 도끼가 나타나는가 하면, 여주인공은 결정적인 순간 도끼는 휘두르지 않고 무려 2∼3분간 비명만 질러댄다.

카메라 연출도 최악이다. 여주인공과 좀비의 추격신을 촬영하던 중 촬영감독이 쓰러지기라도 한 듯 한동안 스크린에 발만 나오는가 하면, 카메라에 피가 묻어도 휴지로 대충 닦아내고 그대로 진행한다.

엉망진창으로 진행되던 영화는 시작한 지 40분 만에 엔딩에 도달한다. B급 호러 무비를 흉내 낸 듯 피로 그린 오망성 안에 도끼를 들고 선 여주인공을 클로즈업하더니 이내 엔딩 타이틀이 올라간다.

당황한 관객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벌써 끝인가? 40분밖에 안 지났는데…혹시 몰래카메라인가’하는 표정이다.

몇몇은 ‘일찍 끝나 다행이다’라는 표정을 감추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뜬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은 95분이다.

남은 시간 유쾌하면서도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기가 막힌 반전이 펼쳐진다. 이를 미리 알리는 것은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다’와 맞먹는 스포일러일 테니 설명은 생략한다.

다만, 영화가 40분가량 진행되는 동안 한 번도 장면전환이 없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정확히는 37분간 단 한 대의 핸드헬드 카메라를 이용해 ‘원 컷’으로 찍은 것이다.

영화는 국제판타스틱영화제 중 최고의 입지를 자랑하는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지난달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돼 국내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부천영화제를 방문한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처음 37분은 정말 원 컷으로 촬영했다”며 “다만, 한 번에 완성작을 낼 순 없어서 8일간 여섯 번 촬영했고, 여러분이 보신 것은 마지막 여섯 번째 촬영본”이라고 설명했다.

영화는 일본 개봉 때도 84석 규모의 작은 극장에서 시작해 입소문을 타고 전국 11개 극장으로 상영관을 늘려갔다. 결국, 10만 관객을 돌파하더니 일본 다양성 영화 순위 1위를 차지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58분간의 반전은 관객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특히, 엔딩장면에 얽힌 뒷이야기는 우리 영화계의 현실과도 크게 다르지 않아 웃음 이상의 짠한 감동을 전한다. 2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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