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범죄자…유력한 용의자는 유전자와 뇌다”

2015년 8월 19일   정 용재 에디터

신경범죄학자 에이드리언 레인의 저서 ‘폭력의 해부’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기억하는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여성 10명이 강간당한 뒤 살해됐다. 범인은 잡히지 않아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이 세상을 공포에 떨게 했다.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1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무려 20명을 살해했다. 범인은 사체 일부를 먹기도 하는 등 잔혹함을 보였다.

이처럼 인간의 잔혹성을 드러내주는 폭력과 살인과 파괴는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이는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다. 인간은 왜 이렇게 나쁜 짓을 할까? 한없이 선한 듯하면서도 한없이 악한 이유가 도대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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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범죄학의 권위자인 에이드리언 레인이 저서 ‘폭력의 해부’를 통해 이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는 ‘왜 어떤 이는 범죄를 저지르고 어떤 이는 그러지 않은가?’라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35년 동안 그 실체 파악 연구에 매달려왔다.

저자는 사이코패스의 생리를 알기 위해 교도소에서 4년간 근무했고, 폭력범죄자에게 뇌 영상 연구를 최초로 적용했다. 번역자인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범죄학의 연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본문만 570쪽이 넘는 방대한 책은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폭력과 범죄의 원인을 사회적·환경적 요인에서 찾곤 한다. 어린 시절의 주거환경이나 청소년기의 친구관계, 불합리한 사회제도와 교육제도 등 개인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사회적 경험과 영향 탓에 범죄자가 된다고 믿는 것.

하지만 저자는 유전자와 뇌에 주목한다. 폭력 행위자, 살인자, 사이코패스 등 범죄자들은 특정 유전자의 결함이나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거나 정상적 작동을 멈춘 뇌 때문에 이상행동을 보인다는 얘기다. 인간의 생물학적 요인이 범죄와 폭력의 주요 원인이라고 본다. 저자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필자인 리처드 도킨스의 제자이기도 하다.

먼저 범죄의 유력한 용의자로 꼽히는 유전자를 보자. 저자는 모노아민 산화효소A를 생산하는 MAOA 유전자는 충동성 통제, 주의력, 기타 인지기능에 관여하는 여러 가지 신경전달물질에 대사작용을 하는데 이 유전자가 결핍되면 낮은 IQ, 낮은 주의력, 높은 충동성, 중독성 약물 남용 등을 초래하며 공격성을 유발한다고 본다.

그 예로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 공격성과 폭력성이 40~50퍼센트 일치한다. 어릴 때 헤어져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도 이 쌍둥이의 반사회적 행동 가능성은 41퍼센트로 일치했다. 유전자·뇌와 범죄·폭력의 상관관계를 나타내주는 것이다.

뇌도 마찬가지다. 고장난 뇌는 쉽게 범죄를 유발한다. 이들 범죄자는 위험 상황에 처해도 두려움을 거의 느끼지 않으며, 범죄를 저지르는 동안에도 태연해 식은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이들은 전전두엽피질, 편도체, 해마, 각회 등 뇌의 특정영역 기능이 일반인보다 현저히 떨어졌다.

냉혈적 범죄자와 다혈적 범죄자의 차이는 뭘까? 냉혈적 범죄좌는 전전두엽피질이 통제된 반면 뇌의 저변에 있는 변연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 그래서 연쇄살인범들이 그렇듯이 비교적 신중하고 계획적으로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이에 비해 다혈적 범죄자는 전전두엽피질의 통제력을 상실해 화가 나자마자 곧바로 뚜껑이 열리고 눈을 깜박하기도 전에 피를 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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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범죄와 폭력은 그저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저자가 유전자와 뇌 중심으로 범죄와 폭력을 연구한 이유는 바로 이 운명적 한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보자는 취지에서다. 바로 사회적·환경적 여건을 바꿈으로써 유전자와 뇌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는 뜻.

이는 반사회적 행동을 야기하는 생물학적 요인과 사회적 요인의 협력을 뜻하는 ‘생물사회적 상호작용’과 연결된다. 사회적 요소(예컨대, 불량한 이웃과 사는 것)가 생물학적 요소(예컨대, 낮은 심장박동수)와 결합하면 아이들의 반사회적 행동 비율이 증가한다는 견해다.

이 가운데 뇌를 살펴보자. 오메가-3는 뇌의 구성과 기능에 결정적 요소로 꼽힌다. 이 뇌에 구조적·기능적 장애가 있는 범죄자들에게 오메가-3가 1그램이 든 과일 주스를 매일 마시게 하면 공격성향이 크게 감소해 그만큼 폭력과 거리가 멀어지더라는 것. 특히 사람들이 변화를 받아들이기 쉬운 인생 초기에 이런 시도를 시작한다면 미래는 지금보다 더 낫고 안전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내다본다.

그러면서 염려스러운 생물학적 성향이 아이에게 나타나지 않게 하려면 무엇보다 부모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즉 폭력적 행동의 예방자이자 해독제는 바로 좋은 부모라는 것. 그중에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첫날부터 아이와의 상호관계를 시작하기’, ‘아이가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하는지 알기’, ‘착한 행동을 했을 때 칭찬하기’, ‘체벌하지 않기’ 등도 있다.

요컨대 사회적·환경적 요인에 주안점을 둬온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유전적·생물학적 요인에도 좀 더 주목해 그 대처방안을 모색해보자는 게 저자의 집필 취지다. 유전적·생물학적 요인에만 초점을 맞출 경우 사회적 책임과 환경적 영향을 도외시하는 운명론적·결정론적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 저자는 그 비중을 반반 정도로 보고 다각적인 해결책을 찾아보자고 권한다.

뇌의 변화를 유도하는 방법 중 하나로 명상을 꼽기도 한다. 마음깨우침 훈련은 뇌의 기능뿐 아니라 그 구조도 바꾼다는 것. 명상 훈련과 치료 후 뇌를 의학적으로 살펴봤더니 전전두엽피질의 회백질 밀도가 상당히 증가해 있더라는 것. 물리적으로 뇌를 개조하는 긍정적 효과를 노력 여하에 따라 괄목할 만하게 거둘 수 있다는 예기다.

흐름출판. 640쪽. 2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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