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 폐렴’ 처음으로 알렸던 의사가 죽자 벌어진 일..

2020년 2월 7일   김주영 에디터

(베이징=연합뉴스) 김윤구 특파원 = 중국 우한(武漢)에서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가 퍼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렸다가 오히려 괴담 유포자로 몰렸던 의사 리원량(李文亮)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나자 중국의 온라인에서 많은 사람들이 애도와 분노를 표하고 있다.

지난 1일 소셜미디어 웨이보(微博)에 “오늘 핵산 검사에서 양성이 나왔다.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확진이다”는 짤막한 글을 남긴 것이 마지막이었다.

46만명이 이 게시물 밑에 쾌유를 기원하는 댓글을 달았지만, 우한중심병원 의사 리원량은 7일 새벽 34세의 나이로 끝내 사망했다.

웨이보 이용자들과 중국 일부 언론은 그를 ‘영웅’이라고 칭했다.

이날 리원량의 사망과 관련한 여러 개의 화제가 웨이보의 인기검색 순위에 올라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 누리꾼은 “온 힘으로 우리를 보호해주려 한 당신에게 감사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리원량은 신종코로나 환자를 진료하다 감염됐고 지난달 10일께부터 기침과 발열 등 증세를 보인 뒤 입원했었다. 그는 회복하면 최전선에서 다시 환자를 돌보겠다는 뜻을 밝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웨이보의 한 이용자는 리원량의 이름에 있는 ‘밝을 량’자를 사용해 “2020년 가장 밝은 별이 졌다”면서 애도를 표했다.

많은 누리꾼은 “결국 이 세상에 기적이란 없다”며 리원량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특히 그가 진실을 알렸는데도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경찰에서 처벌받은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웨이보의 한 이용자는 “천국에는 (경찰의) 훈계 조치가 없기를 바랍니다. 편히 가세요. 영웅!”이라고 썼다.

다른 이용자는 “천당에는 거짓이 없기를”이라고 썼다. 그가 신종코로나를 경고하고도 괴담 유포자로 매도당한 것을 거짓이라고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누리꾼은 “사과하라”는 말과 함께 ‘유언비어를 퍼뜨린 8명이 처벌받았다’는 자막이 달린 중국중앙방송(CCTV) 뉴스 화면을 갈무리해 인터넷에 올렸다.

리원량 사건을 놓고 민심이 들끓자 중국 정부도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국가감찰위원회는 조사팀을 우한에 파견해 의사 리원량과 관련된 문제를 전면적으로 조사한다고 밝혔다.

한 웨이보 이용자는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깊은 애도를 표했다.

우한시 정부도 깊은 애도와 함께 일선에서 전염병과 싸운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웨이보 이용자들은 우한시 정부가 해야 할 것은 사과라고 말했다.

한편 세계보건기구(WHO)도 트위터 계정에서 리원량의 사망을 애도하고, 그가 신종코로나를 맞아서 했던 일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환구시보는 이날 ‘의사 리원량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제목의 사평을 실었다.

신문은 그가 이번 위험한 병마를 가장 먼저 경고한 8명 가운데 하나였다면서 “그의 생전 경고가 중시되지 않았고 그는 오히려 훈계받았다. 이 사건은 전 사회가 반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리원량이 전염병이 폭발하는 시기에 전쟁터와 같은 병원에서 전사처럼 싸우다 순직했다면서 그를 “영웅”으로 칭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많은 사람이 8명의 ‘내부고발자’의 일은 지방 당국이 무능하다는 증거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중국 언론은 대체로 리원량의 사망을 조심스럽게 전하고 있다.

당국은 리원량의 사망이 미칠 파장을 우려해 기사와 소셜미디어의 검열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훈계 처분을 받았던 우한 의사 리원량이 사망했다’는 제목의 남방도시보 기사는 곧 삭제됐다. 그가 신종코로나를 경고하고도 당국으로부터 처벌받았다는 점을 부각한 제목 때문으로 여겨진다.

‘#우한시 정부는 리원량에게 사과해야한다#’는 해시태그는 웨이보에 올라왔다가 신속히 검열됐다.

리원량의 사망 보도를 놓고도 논란이 일었다.

7일 오전 0시께 신경보 등 중국 주요 매체들이 그의 사망 소식을 전했지만, 우한중심병원은 오전 1시께 여전히 긴급 소생 치료를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애초 6일 오후 9시 30분에 리원량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사망 시각이 오전 2시 58분으로 바뀌었다.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질 것을 우려해 당국이 사망 발표를 연기했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누리꾼들은 사망 보도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리원량의 경고는 뒤늦게 재평가받았다.

쩡광(曾光) 중국질병예방통제센터 유행병학 수석과학자는 최근 인터뷰에서 리원량을 포함해 유언비어 유포로 처벌받은 8명을 삼국지의 제갈량에 비유하며 “존경할만하다”고 평가했다.

누리꾼들은 “정부가 일찍 그 말을 들었더라면 지금 같은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은 공감을 얻었다.

중국이 사태 초기 전염병 예방·통제에 전력을 다하기보다는 사회 안정을 우선시하다 황금 방역기를 놓쳐 지금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많다.

리원량은 지난해 12월 30일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유사한 코로나바이러스 증세가 있는 환자 보고서를 입수해 이를 대학 동창들의 단체 채팅방에 공유했다.

그는 12월 31일 새벽 1시에 우한 위생건강위원회에 불려가 발병 소식의 출처를 추궁당했다.

우한 경찰은 새해 첫날 리원량의 경고를 유언비어로 몰아세웠다. 경찰은 허위 사실을 유포해 사회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며 8명을 법에 따라 처리했다고 공지했다. 이들 8명은 리원량을 포함해 모두 의사였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리원량은 지난달 3일 인터넷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올렸다는 내용의 ‘훈계서’에 서명까지 해야 했다. 그는 이후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다 신종코로나에 감염돼 4주 가까이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리원량의 부인은 임신 중인데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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