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동문들이 봉준호에 대해서 한 말

2020년 2월 17일   김주영 에디터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가장 개인적인 것이 창의적인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미국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소감으로 인용한 마틴 스코세이지 말이다.

대학 시절부터 남다른 창의성을 보여준 봉 감독은 작품이 주목받기 이전부터 이미 개인적 경험을 작품 속에 녹여온 것 같다.

그의 영화에는 88학번으로서 봤던 시대의 단상,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성격 그리고 유머 감각 등이 모두 반영됐다.

대학 동문에 따르면 첫 번째 상업 영화 성공작인 ‘살인의 추억’에 20초가량 등장하는 화염병 시위 장면에는 숨겨진 에피소드가 있다.

영화 속에서 화염병을 던진 사람들은 봉 감독 대학 친구들이다. 다만 이들이 대학생이라기엔 다소 나이가 든 탓에 복학생으로 설정됐다.

다섯명 정도의 친구가 휴일인 촬영일 아침 일찍부터 나와 화염병을 던졌다. 봉 감독은 눈빛을 반짝이며 한 사람이 두 개씩 던지기를 주문하기도 했다.

이 장면 자체도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봉 감독은 친구들과 농활을 떠나기로 한 날 다른 시위에 참여했다가 ‘화염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다.

2003년 참여연대 월간 ‘참여사회’에 이 에피소드를 밝힌 대학 친구 육성철 씨는 “같은 세대의, 비슷한 사건을 겪는 사람들이 겪는 시대 의식·동료의식이 영화에 들어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스토리텔링 능력, 영화 장면을 모두 콘티로 그려내는 그림 실력, ‘봉테일’이라 불리는 성격은 그때도 여전했다. 당시에도 복잡한 이야기를 같은 공간 안에 욱여넣고, 결국 하나의 굵직한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교내신문 ‘연세춘추’에 한동안 만평을 연재하기도 했다. 대학등록금 인상 문제 등 시의성 있는 주제들을 비판적 시각과 함께 그려냈다. 자신이 직접 참가한 1989년 여름 농활을 추리극 형태로 만든 만화 ‘농활야사’는 동문 사이에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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