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복자매, 이별 39년 만에 미국 병원서 ‘기적 상봉’

2015년 10월 12일   School Stroy 에디터

AKR20151012001500123_01_i

한 병원 같은 층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다 DNA 검사

(댈러스=연합뉴스) 장현구 특파원 = 고아원을 거쳐 미국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 출신 이복 자매가 이별 39년 만에 미국 병원의 같은 층에서 일하다가 기적처럼 상봉했다.

신복남(46·미국 이름 홀리 호일 오브라이언)씨와 신은숙(44·미건 휴즈)씨는 미국 플로리다 주 새러소타의 닥터스 병원 4층에서 근무하다가 둘 다 한국에서 왔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한 환자의 말을 듣고 친해져 유전자(DAN) 검사를 받은 끝에 지난 8월, 자매라는 믿기 어려운 결과를 접했다.

지역 신문인 새러소타 헤럴드 트리뷴은 신 씨 자매의 불가사의한 상봉을 10일(현지시간) 비중 있게 소개했다.

복남 씨는 어릴 적 어느 날 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만 남겨 두고 계모를 따라 두 살 아래 이복동생 은숙 씨와 함께 야반도주했다.

양육을 포기한 계모는 복남 씨와 은숙 씨를 보육원에 맡겼다.
동생 은숙 씨가 5살이던 1976년 먼저 미국 뉴욕 주 킹스턴에 있는 한 가정으로, 언니 복남 씨는 9살이던 1978년 미국 버지니아 주의 알렉산더에 있는 가정으로 각각 입양됐다.

새 가정에 입양된 후 복남 씨는 동생을 찾고자 미국인 새어머니는 물론 지금은 이혼한 전 남편을 통해 은숙 씨의 행방을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그러나 자매의 생물학적인 자료가 해당 보육원에 남아 있지 않던 탓에 그때마다 복남 씨의 노력은 허사였다.

나중에 알게 됐을 때 약 300마일(약 483㎞) 떨어진 곳으로 각각 입양된 신 씨 자매는 드넓은 미국 땅을 고려하면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소재 자체를 알 수 없던 탓에 서로 존재를 잊고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다.

복남 씨는 1991년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획득해 버지니아 주에서 일하다가 전 남편을 따라 2005년 새러소타로 옮겼다. 수 년간 재활 병동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몇 차례 지원서를 낸 끝에 올해 1월 7일 닥터스 병원에 취직했다.

미국인 새 아버지의 병환 탓에 킹스턴에서 살다가 1981년 플로리다 주 베니스로 터전을 바꾼 은숙 씨는 2002년 간호조무사가 됐다. 여러 병원에서 일하던 은숙 씨는 닥터스 병원으로 먼저 옮긴 남성 동료의 도움으로 구직 인터뷰를 거쳐 올해 3월 1일 언니인 복남 씨가 두 달 먼저 자리를 잡은 닥터스 병원 4층에 합류했다.

한국 출신 간호조무사가 두 명이나 새로 왔다는 소식은 환자들 사이에서 먼저 퍼졌다. 복남 씨는 한 환자에게서 “한국에서 왔다는 또 다른 간호사가 있으니 한 번 만나보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듣고 은숙 씨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은숙 씨의 결혼 전 성(姓)이 자신과 같은 것을 눈여겨본 복남 씨는 한국, 잃어버린 가족 등의 연결고리를 찾아 은숙 씨와 함께 점심도 먹고 공통점을 비교하며 금세 친해졌다. 잃어버린 동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복남 씨는 은숙 씨에게 DNA 테스트를 해보자고 권유했고 캐나다에서 DNA 검사 장비를 사들여 유전자를 채취한 뒤 이를 8월 초에 보냈다.

지난 8월 17일. 캐나다의 검사 기관은 복남 씨에게 둘의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답변을 전자메일로 보냈다.

복남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지느냐”며 “너무 흥분되고 기뻐서 동료 직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고 했다.

환자를 돌보던 은숙 씨는 복남 씨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내게 언니가 있었다니. 하느님 세상에”라며 충격에 빠졌다고 돌아봤다.

자식 없이 혼자 살던 복남 씨는 일약 두 명의 조카를 둔 이모가 됐다. 그간 홀로 외롭게 보내던 휴일도 동생을 만난 뒤 달라졌다.

그는 감격스러운 눈물을 흘리면서 “하느님은 반드시 계신다는 강한 믿음을 갖게 됐다”면서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인생에서 좋은 일은 해서 이런 기적이 온 것 같다”고 기뻐했다.

cany9900@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