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현종 시기, 경신년과 신해년에 발생한 경신대기근은 조선 팔도를 휩쓸며 극심한 혼란과 고통을 초래했다. 이 시기 기후는 태양 활동 저하로 인해 지구 평균 기온이 1도 이상 낮아지는 ‘소빙하기’ 상태였다. 현재의 지구 온난화가 약간의 기온 상승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당시 1도 하락은 얼마나 극심한 추위를 동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670년, 한반도에는 1월부터 유성과 운석이 떨어지는 자연재해가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이로 인해 하늘에는 미세먼지와 구름이 자욱했으며, 햇빛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기온은 더 떨어졌고, 달무리와 해무리가 매일같이 나타나며 전조현상을 예고했다.
기상변화는 극심한 우박과 한파로 이어졌다. 1월부터 4월까지 계속된 우박은 농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농민들은 추수는커녕 씨를 뿌리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고, 이는 한 해 농사를 모두 망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여기에 전염병이 퍼지며 인명피해가 급증했다.
자연재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땅에서는 강력한 지진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며 건물과 마을을 파괴했다. 특히 한반도처럼 지진이 드문 지역에서 1년 동안 다섯 번의 큰 지진이 발생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여름철로 접어들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5월에는 대규모 홍수가 발생하며 기존의 곡식들을 쓸어버렸다. 농업이 불가능해지면서 수재민들은 생존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이어지는 병충해와 메뚜기 떼로 인해 살아남은 곡물들마저 전멸했다.
1670년 7월에는 초대형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하며 해일과 산사태를 동반했다. 해안가 지역은 소금기로 인해 농업이 불가능해졌고, 한반도 전역이 경제적, 생태적 손실을 입었다. 이어지는 구제역으로 인해 농업의 주요 자원인 소마저 대량 폐사하며 농민들은 더욱 극심한 고통에 빠졌다.
경신대기근은 단순히 자연재해가 아닌 당시 조선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낸 사건이었다. 농업 경제 중심의 사회에서 자연재해는 치명적이었다. 이 사건은 자연재해에 대비하지 못한 사회 구조와 정책적 준비 부족을 반성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