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가 곡창지대를 차지하고도 군사적으로 불리했다는 땅크기

2024년 12월 25일   정 용재 에디터

고려와 후삼국 시대의 흥미로운 역사를 살펴보면, 후백제와 고려 간의 격돌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후백제는 당시 곡창지대를 장악하며 지리적 우위를 바탕으로 고려와의 대립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인구의 절대적 열세와 전략적 선택이 이 대립 구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삼국시대부터 널리 퍼져 있던 말목장은 곡창지대의 활용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말목장의 위치는 군사적 동원력 확보에 결정적이었으며, 이러한 배경에서 후백제가 곡창지대를 점유한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말목장은 넓게 풀어 키우기 좋은 지역에 위치했기에 농토로 이용되지 않았으나, 이는 곧 말목장의 가치와 역할을 부각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고려는 기병 중심의 군대를 운영하며 약 5만에 가까운 기병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후백제와의 대립 구도에서 결정적 변수로 작용했으며, 말목장과 관련된 전략적 요충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송나라와 금나라 간의 질적 우위와 비슷한 연유로 후백제가 밀리는 모습을 보이지만, 이는 곧 고려의 기동성과 군사력의 효율성을 입증하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이처럼, 고려와 후삼국 시대는 단순한 영토 확장 이상의 전략적 사고와 군사적 배경이 얽혀 있습니다. 말목장의 위치와 군사적 활용이 당시 역사의 흐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이것이 고려의 성장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