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나라의 황제였던 영락제의 통치 아래, 명나라는 약 2억 명에 가까운 인구를 보유한 대제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규모 국가에서도 중앙조정을 이루는 신료의 수는 겨우 800명에 불과했습니다. 조선이 인구 1,000만 명 수준에서 중앙 신료가 약 500명인 점을 고려할 때, 명나라의 신료 수는 인구 대비 극히 적은 편이었습니다.
이는 과거시험을 통한 관리 선발이 조선보다도 훨씬 어렵고 제한적이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조선에서도 과거시험을 통과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지만, 명나라에서는 이러한 과거시험이 더욱 치열한 경쟁을 요구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명나라는 인구 대비 극소수의 신료로 중앙조정을 운영할 수 있었을까요? 여기서 영락제의 통치 방식이 주요 원인으로 드러납니다. 영락제는 신료들의 권력을 제한하고 환관들을 주요 관직에 활용하여 행정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환관들은 신뢰받는 황제의 직속 기구인 “동창”을 구성하며 국가의 비밀정보를 관리하고 집행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베이징 자금성에 거주하던 관리들이 약 800명 수준인 반면, 환관들은 5만 명 이상으로 숫자적으로도 압도적이었습니다. 환관들의 이러한 대규모 활용은 명나라의 독특한 행정 체계와 황제의 통치 전략을 보여줍니다. 이는 중앙조정을 신료들만으로 구성했던 다른 국가들과는 차별화된 명나라만의 특징으로, 당시 행정 체제의 강점과 약점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