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백제가 곡창지대를 먹어놓고도 군사적으로 불리했다는 땅크기

2025년 1월 1일   정 용재 에디터

후삼국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면, 당시의 전략적 지형과 자원의 배분이 국가 간 힘의 균형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후백제는 곡창지대로 불리는 전라도와 충청도 일대를 점유하며 풍부한 인구와 농업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에 비해 고려는 상대적으로 좁은 영토를 가진 상태에서 후백제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전략적 판단이 필요했다.

특히,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건국자 견훤 간의 대립은 후삼국 통일 과정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견훤은 자국의 인구와 자원을 과신하며 고려를 압도하려 했지만, 고려는 전략적으로 기병을 활용해 일리천 전투 등에서 후백제 군을 꺾었다. 이 전투에서 고려는 5만 명에 달하는 대규모 기병을 동원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후백제는 말 목장의 운영에서도 강점을 보였지만, 이는 곡창지대가 아닌 미개척지에 집중되어 있어 농업과 병행한 군사 자원으로 전환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반면 고려는 전략적으로 기병 중심의 군사력을 발전시키며 전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이는 절대적인 인구수만으로는 전쟁의 결과를 결정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결국 후삼국시대의 주요 토지와 자원 분배는 현재와는 다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당시의 지형적, 전략적 요소는 단순히 인구나 자원의 양뿐만 아니라 이를 활용하는 방식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