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시대의 비극, ‘마비키’—생존을 위한 선택인가, 잔혹한 현실인가?”
에도 시대 일본에서 벌어진 ‘마비키(間引き)’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충격적이지만, 당시 서민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마비키란 ‘솎아내기’라는 의미로, 농경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지만, 이 시기 일본에서는 태어난 아이 중 일부를 생존 가능한 범위로 줄이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높은 세금 부담과 식량 부족이라는 현실 속에서 가족 단위의 생존을 위한 방편이었다.
전국 시대가 끝나고 평화로운 에도 시대가 도래했지만, 일본의 인구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자연적인 요인이 아니라, 마비키라는 풍습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일본의 세율은 당시 동북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일반적인 세금 외에도 공납과 부역까지 고려하면 백성들이 감당해야 할 부담은 극심했다. 조선의 세율이 1025%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일본의 농민들은 무려 생산량의 5070%를 세금으로 바쳐야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난한 농민들이 자녀를 줄이려 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7세 이하의 아이들은 ‘신의 아이’로 불렸는데, 이는 신의 품으로 돌아간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부모들은 죄책감 없이 아이를 포기할 수 있었다. 이는 인간적인 정서와는 동떨어진 사고방식이지만, 당시 일본 사회에서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풍습은 이후 메이지 시대(1868년)부터 금지되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1930년대까지도 암암리에 이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 일본에는 ‘오바스테(姥捨て)’라는 풍습도 존재했다. 이는 노인이 일정 연령이 되면 산에 버려지는 행위를 뜻하는데, 마비키와 더불어 생존을 위한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일본 영화 *나랴야마 부시코(楢山節考)*는 이러한 풍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당시 사회의 비극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문화가 한국이나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도 존재했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다. 고려장의 경우 한국에서는 역사적 기록이 없는 일본의 창작물로 여겨지고 있다. 고려 문헌 어디에도 고려장이 언급된 바 없으며, 이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일본의 마비키와 오바스테는 실재했던 역사적 현상으로, 당시 일본인들이 겪었던 혹독한 삶을 반영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풍습이지만, 당시 일본 농민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일본이 높은 세율을 유지한 배경과 함께, 이러한 풍습이 형성된 이유를 살펴보면 당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오늘날의 기준으로 과거의 풍습을 평가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