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족이 일본의 식민 지배 아래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역사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다. 대한제국이 일제에 의해 강제 병합된 후, 왕족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귀족의 지위를 부여받아 상당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생활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인물들은 독립운동과 거리를 두고 일본과 협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조선의 왕족들은 일본 황실의 귀족 계급으로 편입되었다. 그들은 일본 정부로부터 고액의 연금을 지급받으며, 도쿄와 기타 지역에서 비교적 안정된 삶을 유지했다. 당시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는 대조적인 삶이었다.
특히 의친왕과 그의 아들 이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왕족들은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 이는 후대의 역사적 평가에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걸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울 때, 왕족들은 상대적으로 평온한 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국민적 실망을 불러일으켰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지만, 이들이 왕실의 부활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임시정부는 조선왕조의 연장선이 아닌 공화국을 추구했고, 이는 당시 국민들이 조선 왕조에 대한 실망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역사적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일부에서는 조선 왕족이 일본의 감시 아래 있었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할 수 없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그들이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기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