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잊혀진 역사, 다시 밝혀지다
한때 고구려의 후예로 불리며 동아시아에서 강성했던 발해. 하지만 그 영토와 영향력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최근 발해의 유적들이 잇따라 발견되면서 학계와 대중의 관심이 다시금 쏠리고 있다. 특히, 국사로프카 성과 트로이츠코예 발해 유적의 발견은 발해의 실제 영토 범위를 기존보다 훨씬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국사로프카 성과 트로이츠코예 유적, 발해의 영토를 넓히다
과거 발해의 북쪽 경계는 대략 연해주와 만주 일대로 추정되었지만, 국사로프카 성의 발견으로 인해 그 범위는 더 북쪽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유적이 발해의 것임이 밝혀진다면, 발해의 북방 경계는 기존보다 훨씬 위쪽으로 설정될 수 있다. 또한 트로이츠코예 지역에서 발해 유적이 출토되면서, 그동안 학계에서 추정하던 발해의 영토가 실은 더 넓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고구려보다 작았을까? 아니면 비슷했을까?
발해는 고구려의 계승국으로서 고려와 함께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을 지배했던 나라다. 하지만 그 영토의 크기와 영향력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 따랐다. 학계에서는 ‘고구려보다 작은 나라’라는 시각이 우세했지만, 최근 연구에 따르면 발해 역시 고구려 못지않은 광대한 영역을 통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발해의 중심지였던 상경 용천부부터 동경(훈춘), 남경(평양)까지의 주요 도시는 물론, 새로운 유적이 발견된 연해주와 시베리아 지역까지 포함한다면 그 국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일 수 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강국, 발해
발해는 한때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리며 번성했지만, 10세기 중반 거란(요나라)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이후 발해 유민들은 고려로 유입되었고, 일부는 여진족과 동화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최근 발해의 유적이 지속적으로 발견되면서, 발해가 단순한 소국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국가였다는 점이 재조명되고 있다.
네티즌 반응과 역사적 재평가
이러한 연구 결과에 대해 네티즌들은 ‘발해가 생각보다 훨씬 큰 나라였네’, ‘고구려와 거의 맞먹는 수준이었다면 고려랑도 비교될 수 있지 않나?’, ‘이런 나라를 왜 제대로 배우지 않았을까’라는 반응을 보이며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일부 역사 연구가들은 ‘단순히 영토 크기가 크다고 강대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더 고려해야 한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