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생각합니까> ① 입사시험 불합격 사유 통보는 과도(경총)

2015년 5월 18일   정 용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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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보는 취업준비생(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현혜란 기자 = 롯데그룹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신입사원을 공개채용할 때 면접 불합격자에게 그 사유를 설명해주는 피드백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역량면접, 토론면접, 임원면접 등 면접 전형별 응시자 평균 점수와 불합격자의 점수를 표기해 이메일을 보내주는 식이다.

기업의 반응 하나하나가 소중한 취업준비생에게는 이런 피드백이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와 같다. 실제로 취업준비생 사이에서 반응도 좋았다.

이러한 채용문화를 법제화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이 지난 2월 대표 발의한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는 불합격자에게 탈락사유를 고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김양건 전문위원은 지난달 제출한 검토보고서에서 “개정안 취지의 타당성은 있다고 보지만 근로자의 불합격 사유를 상세히 작성하도록 하는 것은 구인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정량적 요소만을 통보할 경우 구직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법안을 바라보는 당사자의 시선은 어떨까. 구인자를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8일 불합격 사유까지 통보하는 것은 기업에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반대했다.

다음은 이광호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정책팀장의 반대 입장이다.

▲ 이광호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정책팀장

함께 일할 사람을 뽑을 때 탈락한 사람에게 그 이유를 의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면 기업이 짊어져야 할 행정부담이 과도해진다. 채용 프로세스에 과도한 인력이 투입될 것이다. 기업의 생산성이라던지 기업의 근로자 처우개선과 관계가 없는 업무에 엄청난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는 셈이다.

관련 업무는 인사부의 채용 담당자가 맡을 텐데, 기업에서 채용만 전담하는 직원은 많지 않은 편이다. 수십 명이면 몰라도 채용 과정에서 탈락하는 사람의 숫자가 수천 명, 수만 명인 대기업을 생각해보자. 아무리 대기업일지라도 인사부 소속 직원이 이 엄청난 숫자를 감당할 만큼 많지 않다. 특히 탈락 사유를 의무적으로 지원자에게 알려줘야 한다면 대기업이 가장 큰 부담을 지게 될 것이다. 사람을 많이 뽑을수록 행정부담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비단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위 잘 나가는 중견기업에는 지원자가 많게는 수천 명씩 몰리지만, 인사 담당자는 1명뿐인 경우가 많다. 혼자 수천 명에게 연락을 개별적으로 돌린다고 상상해본다면 얼마나 과도한 업무량인지 알 수 있다.

필기 전형에서는 점수라는 객관적인 기준이 있으므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겠지만, 면접 전형에서는 왜 탈락했는지 설명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다. 태도가 불손했다는 등 주관적인 요소가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성도 기업이 인재를 뽑을 때 놓칠 수 없는 평가 항목이다.

구직자를 위해 만든 탈락 사유 고지 의무화가 오히려 구직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필기전형과 면접전형 탈락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기업이 부담해야 할 행정비용이 늘어나므로, 애초에 서류전형의 문턱을 높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업이 채용할 수 있는 인원은 한정돼 있으니, 결국 서류 단계에서 ‘스펙’을 중시하는 풍토가 횡행할 것이다. 서류 전형 통과 기준을 낮추고, 최대한 많은 지원자에게 필기 전형과 면접 전형에 응시할 기회를 주려는 ‘스펙초월’ 추세가 약화할 수 있다.

사람을 뽑는 것도 기업의 경영활동이다. 기업이 교육기관도 아니고 경영판단에 대한 결과물을 일일이 설명해 줄 필요가 없다. 특히 사기업에 이런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불필요해 보인다.

채용 광고에다 대상 업무, 임금, 채용 예상 인원 등을 명시해야 한다는 부분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요즘 기업 채용은 통합 직군으로 뽑는 게 대세다. 인문, 어학 계열도 전공 제약 없이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상업무를 한정해서 직원을 뽑으라고 한다면 특정 전공자만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해 구직자의 입장에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임금은 영업기밀인데다, 공개하면 연봉이 높은 대기업 쏠림 현상이 더욱 심해져 중소·중견기업에 타격이 갈 것이다.

채용 예상 인원도 미리 공개하면 기업 입장에서 사람을 뽑을 때 제약이 생긴다. 기업이 5명을 뽑겠다고 했다가 뛰어난 지원자가 많아 10명을 뽑는다면 별문제가 되지 않지만, 마음에 드는 지원자가 없어서 2명만 뽑는다면 모든 비난의 화살이 기업으로 돌아온다. 사실 기업은 훌륭한 인재를 원해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뿐인데 말이다. 이런 비난을 피하기 위해 기업은 채용인원을 최소치로 잡을 테고, 구직자 처지에서는 취업의 문이 더 좁아진 것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필기·면접 전형에서 탈락한 모든 지원자에게 그 사유를 설명해준다면, 구직자 입장에서는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 파악하고, 잘못된 점을 고쳐나가는 기회는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 편익에 비해서 기업이 받아 안아야 할 손실이 너무 크다.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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