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만나는 이주민의 손맛> ①서교동·상수동

2015년 5월 18일   정 용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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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음식점 ‘타버나 드 포르투갈’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포르투갈 음식점 ‘타버나 드 포르투갈’ 외관.
포르투갈인 요리사 아고스티노 다실바(46) 씨와 한국인 아내 이희라(46) 씨가 운영하는 이 식당은 2013년 11월 문을 열었다. 201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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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메뉴 못지않게 빵과 디저트도 일품 ‘타버나 드 포르투갈’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 모두 갖춘 태국 요리의 진수 ‘똠얌꿍’

<※ 편집자 주 = 귀화자를 포함해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지난해 행정자치부 통계 기준 42만 명으로 국내 전체 외국인의 26%에 달합니다. 서울시 전체 인구가 대략 1천만 명이니 서울시민 100명 중 네 명은 외국인인 셈입니다. 날로 늘어가는 외국인은 거대도시 서울의 풍경을 바꾸고 있습니다. 곳곳에 이국의 식당이 생겨나고, 다른 나라에서 온 이웃을 만나는 건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도 이주민이 직접 꾸려가는 식당은 이들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삶의 현장’입니다. 연합뉴스는 건강한 다문화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서울시와 협력해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이주민의 과거와 현재가 담긴 맛집을 소개합니다.>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흔히 ‘홍대'(앞)로 통칭하는 서교동과 상수동 일대는 최근 몇 년 사이 서울의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떠올랐다. 대형 상점이 즐비한 번화가 뒤편에 자리 잡은 소규모 식당과 가게는 일상에 지친 젊은이들을 끌어모았고, 어느덧 유행의 중심지가 됐다.

이국의 색다른 맛을 찾는 서울시민에게도 이 일대는 ‘숨은 보물’이 가득한 곳이다. 그 가운데도 현지인이 꾸려가는 식당은 서울 안에서 세계를 만나는 창이 되고 있다.

◇ 국내 최초의 포르투갈 식당 ‘타버나 드 포르투갈’

극동방송 맞은편 뒷골목을 누비다 보면 산호색 외벽이 인상적인, 자그마한 식당을 만나게 된다.

붉은색과 녹색 바탕의 간판부터 포르투갈의 색깔이 선명한 이곳은 지난 2013년 11월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포르투갈 전문 음식점 ‘타버나 드 포르투갈'(TAVERNA de PORTUGAL)이다.

입구로 들어서면 포르투갈 각 지방의 전통 의상을 그린 벽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냉장고 위에 자리한 포르투갈 출신 축구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사인볼이 더욱 반가울 법하다.

식당 한쪽 벽을 차지한 개방형 주방에서는 다부진 체구의 요리사 아고스티노 다실바(46) 씨가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언뜻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알고 보면 농담하길 좋아하고 잔정 많은 포르투갈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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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을 맛보세요!”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포르투갈 음식점 ‘타버나 드 포르투갈’의 대표 메뉴인 프란세진야(왼쪽)와 피리피리 그릴치킨. 201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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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국인 아내 이희라(46) 씨와 함께 한국에 온 그는 “포르투갈 음식을 먹고 싶어도 갈 데가 없어 고민하다 아내와 동업해 직접 식당을 차렸다”고 한다.

식당 이름은 ‘포르투갈 선술집’이란 의미지만, 부부는 모두 해외 호텔에서 장기간 근무한 요리 전문가들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도 스위스의 한 호텔이다.

스위스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한 이희라 씨는 1학년이던 1995년 현지의 한 호텔로 실습을 나갔다 그곳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다실바 씨를 처음 만났다.

“말이 잘 통해 쉽게 친해졌다”는 두 사람은 자연스레 연인으로 발전했고, 1998년 결혼에 골인했다.

이후 부부는 영국으로 가 각자 호텔에서 일하며 경력을 쌓았다.

이 기간 다실바 씨는 사보이호텔과 돌체스터호텔 등 런던의 유명 호텔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 요리를 담당하며 실력을 인정받았고, 이 씨는 호텔 업무 전반을 경험했다.

둘 다 호텔 전문가인데도 직접 식당을 꾸려가는 건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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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 부부가 운영하는 ‘타버나 드 포르투갈’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포르투갈 전문 음식점 ‘타버나 드 포르투갈’에서 포르투갈인 요리사 아고스티노 다실바(46·오른쪽) 씨와 한국인 아내 이희라 씨가 요리를 만들고 있다.
부부가 운영하는 ‘타버나 드 포르투갈’은 2013년 11월 문을 열었다. 201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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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을 운영하는 게 익숙지 않다 보니 처음에는 메뉴도 들쑥날쑥했고, 음식의 맛이 일관되지 않았어요. 지금은 메뉴도 자리를 잡았고, 맛도 더 좋아졌어요. 그러다보니 처음에 온 손님들에게는 좀 미안하죠.”(이희라)

초반에는 외국인 손님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한국인 손님이 많아지고 단골도 점점 늘고 있다는 게 이 씨의 전언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포르투갈의 전통 샌드위치인 프란세진야와 우리나라 치킨에 비유되는 ‘포르투갈의 국민음식’ 피리피리 그릴치킨이다.

작은 프랑스라는 뜻의 프란세진야는 프랑스의 크로크무슈(햄을 넣은 빵 위에 치즈를 녹인 샌드위치)를 변형한 요리다. 스테이크 고기를 녹인 치즈로 덮고, 7가지 알코올과 토마토로 만든 소스 위에 올려서 낸다. 따뜻할 때 먹어야 제 맛이 난단다.

포르투갈 고추 피리피리를 발라 구운 피리피리 그릴치킨은 포르투갈 동네마다 흔히 있는 메뉴다. 푸짐하게 먹는 걸 좋아하는 포르투갈 사람들은 밥, 샐러드, 감자튀김을 곁들여 먹는 걸 즐긴다. 이곳에서도 콤보 메뉴로 만날 수 있다.

“포르투갈 음식은 다른 서양 음식보다 한국 사람 입맛에 더 맞을 겁니다. 보기에는 투박하지만 재료의 특징을 잘 살려서 자연스러운 맛이 있거든요. 유럽에서 쌀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인 만큼 쌀도 많이 써요.”(이희라)

여기에 각종 빵과 디저트를 빼놓을 수 없다.

빵(pao)이란 단어가 포르투갈어에서 왔을 정도도 포르투갈의 제빵 기술은 세계적이다. 이곳에서는 식사용으로 많이 먹는, 담백한 빵드아구아(물을 많이 넣어서 반죽한 빵. 물빵이라는 의미)와 함께 카스텔라의 원조인 빵드로와 에그 타르트의 원조인 파스텔 드 나타스를 맛볼 수 있다. 카스텔라 역시 포르투갈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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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인 요리사 아고스티노 다실바 씨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포르투갈 전문 음식점 ‘타버나 드 포르투갈’에서 포르투갈인 요리사 아고스티노 다실바(46) 씨가 음식을 만들고 있다.
다실바 씨는 2013년 11월부터 한국인 아내와 함께 ‘타버나 드 포르투갈’을 운영하고 있다. 201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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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의 맛을 살리기 위해 향신료는 유럽산을 쓰고, 소스부터 빵까지 모두 직접 만든다. 이러다보니 주방을 책임진 다실바 씨는 쉴 틈이 없다. 오전 9시 30분에 출근해 미리 반죽해놓은 디저트를 굽고, 밑 재료를 손질한다.

다실바 씨는 “힘들지만 나를 위한 삶이라 괜찮다”며 “한국 사람들은 너무 압박감이 많은 것 같은데 좀 더 즐기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웃어 보였다.

이 씨는 “종일 식당에 둘이 있다 보니 자주 티격태격한다”며 “같은 한국 사람이었으면 감정이 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워낙 문화 차이에 익숙해 서로 그러려니 여긴다”고 18년차 부부의 노하우를 전했다.

◇ 태국 현지의 맛을 간직한 ‘똠얌꿍’

서교동주민센터 뒤편 골목을 걷다 보면 눈에 띄는 식당 간판이 있다. 하얀 바탕에 파란 신명조체로 선명하게 쓰인 ‘똠얌꿍’이 바로 그것.

태국 전통 요리를 그대로 딴 데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태국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이 함께 운영하는 태국 전문 음식점이다.

지난 2012년 11월 문을 연 식당 ‘똠얌꿍’은 흡사 태국 마을에서 만날 법한 향토적인 인테리어를 자랑한다.

전통 의상을 입은 목각인형부터 태국 국왕의 초상화, 태국의 풍경을 담은 각종 사진까지 애써 치장하지 않은 듯한 매력이 오가는 이의 발길을 잡아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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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 태국 음식점 (서울=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태국 음식점 ‘또ㅁ얌꿍’.
한국인 남편과 태국인 아내가 운영하는 ‘또ㅁ얌꿍’은 2012년 11월에 문을 열었다. 2015.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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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 있을 때 호텔에서 일했고, 평소 요리를 좋아했다는 아내 사와니 스리콘찬(41) 씨는 2002년 한국에서 남편을 만나 이듬해 부부의 연을 맺었다. 부부는 2006년 부천에서 태국 식당을 운영하다 파주를 거쳐 이곳 서교동에 둥지를 틀었다.

처음에는 식당 이름을 태국식 파파야 샐러드인 ‘쏨땀’으로 하려 했지만 한국인들에게 좀 더 친숙한 메뉴가 낫다고 판단해 ‘똠얌꿍’으로 정했다.

간판 메뉴 역시 똠얌꿍이다. 이곳의 똠얌꿍은 현지에서 먹는 것처럼 매콤하고 신맛이 강하다.

스리콘찬 씨는 “똠얌꿍에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이 다 있다”며 “하지만 진짜 태국식으로 하면 못 먹는 사람이 있어 약간 약하게 만든다”고 소개했다.

튀긴 게를 넣은 커리인 뿌빳뽕커리 역시 인기 메뉴다. 맛도 맛이지만 가격에 비해 푸짐한 양이 매력이다.

‘똠얌꿍’이 문을 열던 3년 전, 서교동 일대에는 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드물었지만 이후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현지의 맛에 눈을 뜬 고객이 늘어났다는 의미다.

토속적인 느낌이 강한 ‘똠얌꿍’도 손님의 80% 이상이 한국인이다.

스리콘찬 씨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며 “손님의 마음을 끌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아들 딸 남매를 둔 스리콘찬 씨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아이(아들)가 이 동네를 정말 좋아한다”며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말도 안 통하고 많이 힘들었지만 이렇게 돈도 벌고 애도 키울 수 있어 다행”이라고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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