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거의, 봉합 직전이었다”…티아라 사태, 3박4일의 전말
“진실없는 사실들” (2012.07.30. 류화영)
[Dispatch=안나영·양지연기자] 2012년 7월 30일, 화영의 탈퇴가 결정됐다. 소속사 ‘코어콘텐츠미디어'(현재 MBK엔터)는 이날 “가수 류화영과의 계약을 조건없이 해지한다”며 탈퇴를 발표했다.
화영은 자신의 SNS에 심경을 올렸다. “진실없는 사실들”이 그의 첫 마디였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사실일까. 어떤 진실이 빠졌고, 어떤 사실이 존재할까.
우선 사실부터 확인하자.
① 화영이 부축을 받으며 공항에 나타난 것(24일). ② 일본 부도칸 무대에서 1곡(데이바이데이)만 부른 것(25~26일). ③ 효민이 SNS에 ‘의지의 차이’라고 올린 것(25일). ④ 화영이 ‘뮤직뱅크’ 무대에 오르지 않은 것(27일).⑤ 화영의 탈퇴가 공식발표된 것(30일).
①~⑤는 명백한 팩트다. 단. 사건의 배경은 생략된 사실들이다. 당시 효영은 그 진실이 무엇인지 밝히지 않았고, 티아라의 해명은 어느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진실없는 사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2017년 2월 9일, 그날의 일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랐다. 왜 화영이 부축을 받았고, 왜 효민이 글을 올렸으며, 왜 화영이 ‘뮤뱅’에서 빠졌는지… 그 배경이 폭로(?)됐다.
이 스태프의 글은 사실일까. ‘진실없는 사실’에 빠져있던, 그 진실일까. 아니면 무엇도 아닌 거짓일까.
‘디스패치’는 2012년 티아라와 함께 일했던 스태프 6명을 만났다. 스타일링을 담당했던 스태프, 현장을 커버했던 매니저 등에게 5년전 일을 다시 물었다.
<25일 오후>
일단, 사건의 촉매제는 25일 효민이 남긴 멘션이다.
“의지의 차이” (2012.07.25. 효민)
‘디스패치’는 당시 현장에 있던 스태프에게 ‘왜’를 물었다. 그는 25일 일본 부도칸 대기실부터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멤버들 모두 예민해 있었죠. 걸그룹 최초의 부도칸 공연이었으니까. 화영은 그 중요한 리허설에 불참했습니다. 개인 시간을 가졌죠. 효민은 그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현장 스태프)
화영의 반응은 어땠을까? 또 다른 스태프는 당시 효민의 표정을 언급했다.
“효민이 화영에게 말을 걸었어요. 이러지 말자고 했겠죠? 화영은 헤드셋 볼륨을 높였어요. 말을 섞기 싫다는 의미겠죠. 효민은 대화를 포기하고 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효민은 7월 25일 오후 4시 54분에 트윗을 올렸다. 그게 바로, 의.지.의.차.이.였.다. 공연 1시간 전이었다.
<24일 오후>
티아라 멤버들은 효민의 멘션에 공감을 표했다. 은정은 “자신의 옆사람들을 돌볼 줄 알아야지”라고 동조했다. 소연은 “의지+예의+배려의 차이”라고 덧붙였다.
그들은 왜, 한 목소리를 냈을까. 일본에 도착한 그날, 7월 24일의 이야기다. 당시 이동을 담당한 현지 관계자가 상황을 설명했다.
화영은 일본에서도 병원을 찾았다. 깁스를 해야 한다는 것. 결국 티아라 7명은 부도칸으로 갔고, 화영은 그 사이 현지 병원으로 향했다.
“(한국병원과 마찬가지로) 일본 의사도 깁스를 할 정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연적인 치유를 권했습니다. 단, 주의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죠.” (현장 매니저)
화영은 아무 소득(?)없이 병원에서 나왔다. 그러나 다음 행선지는, 부도칸이 아니었다. 화영은 호텔을 원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시발점인 ‘네일아트’ 발언이 이어졌다.
“어차피 공연을 못하니까 호텔에서 쉬겠다고 말했습니다. 어차피 호텔에서 쉬니까 네일아트를 받겠다고 말했고요. 이 이야기가 멤버들 귀에 들어갔습니다.” (현장 스태프)
<24일 그 시각>
그 시각, 티아라 7명은 동선을 새로 짜고 있었다. 8인조를 7인조로 바꾸는 작업이다. 현장에선, 일명 ‘화영 빠진 버전’으로 불렸다.
당시 공연 관계자는 ‘디스패치’에 “대략 22곡 정도를 다시 짰다”면서 “멤버 뿐 아니라 음향, 조명 등의 스태프도 고생했다. 리허설은 약 8시간으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티아라는 23일 밤 ‘음악중심’ 울산 특집을 끝냈다. 서울 도착 시각은 24일 새벽 3시. 멤버들은 약 3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 일본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모두 지친 상태였습니다. 그 와중에 8시간을 연습했죠. 만약 화영이 리허설 현장에 나타나 (무대에서) 본인 자리만 알려줬어도 시간은 단축됐겠죠.” (현장 스태프)
그날 화영은 끝내 리허설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손톱 손질 여부는, 모른다. 일본 현지 매니저는 네일 아티스트를 따로 불러주지 않았다. 예약이 안된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26일 오후>
통증의 차이는 있다. 고통의 크기도 다르다. 화영의 통증은 정확히 본인만 느낄 수 있다. 또한, 더 큰 부상을 막기위해 쉬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하지만 오해가 쌓였고, 불신이 됐다. 아니, 서로 다른 지점을 보고 있었다.
티아라는 ‘미안하다’, 또는 ‘고생한다’는 말을 직접 듣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화영의 사과는 26일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 앞에서) 이루어졌다.
반대로 화영은, ‘괜찮아’ 또는 ‘신경 쓰지마’라는 위로를 받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러나 멤버들은 화영의 태도에 실망했다. 리허설 대신 호텔을 택한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티아라와 화영은 그렇게 2박 3일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바로, 27일 ‘뮤직뱅크’ 대기실이다.
<27일 오후>
여기부터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한 스태프가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도 없는 내용이다. 서로 봉합되고 있었다는 것. 결국 타이밍이 모든 걸 망쳐놨다.
다음은 티아라와 사적으로도 가깝게 지낸 스태프의 증언이다.
“효민이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진심으로 말했어요. 화영도 진심을 보였습니다. ‘알겠어’라고 답을 했죠. 그리고 혼자 걷는 연습을 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스태프에 따르면, 티아라 사태는 그렇게 봉합되는 줄 알았다. 화영의 언니 효영이 문자를 보내기 전까지. 그게 바로 ‘뮤뱅’ 생방송 1시간 전이었다.
‘디스패치’는 당시 대기실에 있던 또 다른 스태프와도 통화했다. 그는 아름의 정색한 얼굴, 멤버들이 다시 모인 모습, 화영의 당황한 표정 등을 목격했다.
“아름의 얼굴이 굳어졌죠. 무섭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언니들에게 도움을 청했죠. 그때 효민은 화영에게 빨리 해결하라고 말했습니다. 화영은 대기실 밖으로 나갔고, 울면서 통화를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추측을 덧붙였다.
“화영 본인도 (일본이) 마냥 편하진 않았을겁니다. 효영에게 하소연을 했겠죠. 하지만 효영은 화해모드가 조성된 건 몰랐을 겁니다. 동생을 생각해 보낸 문자가, 서로를 완전히 갈라놓았죠.”
<27일 저녁, 이후>
물은 이미 쏟아졌다. 더이상 담을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온갖 추측이 이어졌다.
“화영이 울면서 뛰쳐 나갔다”는 목격담은 ‘왕따설’을 부채질했다. 그 사이 “화영에게 떡을 강제로 먹였다”, “효민이 화영의 눈을 찔렀다”, “보람이 우산을 망가뜨렸다”, “지연이 하이파이브를 안했다”는 등의 루머가 양산됐다.
티아라는 해명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왕따의 주범이었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화영은 긍정도 부인도 안했다. 대신 함은정이 (왕따설로) 드라마를 하차하자, 처음으로 입장을 내놓았다.
“멤버들과 의견차로 대립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왕따설이 돌고 상황이 악화된 사실들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서로 왜곡된 사실들로 인해 상처받아 많이 속상했습니다.”
티아라와 화영은 각자의 길을 걸었다. 그렇게 5년이 흘렀고, 화영은 한 토크쇼에 출연했다. 담담하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기억했다.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면, 끝이 없다. 화영의 태도에 효민이 글을 남겼고, 효민의 글에 화영이 공격받고, 화영이 공격받자 효영이 협박하고, 효영이 협박해 화영이 방출되고….
이 연결 고리에서 어느 하나라도 빼면, 극단적인 사태로 이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한 마디로, 있을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의 문제가 아니다.
시작은 사소했고, 감정은 격해졌고, 오해는 불신을 낳았다. 그리고 티아라는 여전히 괴물로 취급받고, 화영은 ‘피코’의 아이콘이 됐다.
[출처: //www.dispatch.co.kr/665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