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마약왕 구스만 독방에 매춘부·비아그라 반입”

2015년 7월 24일   정 용재 에디터
화려한 수감생활 전모 드러나…’마약계의 살아있는 전설’ 수식어
마약조직 재건, ‘최장수 갱단 두목’ 입지 구축 전망도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동경 특파원 = 멕시코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56)이 마약계의 ‘전설적인 인물’이 되고 있다.

삼엄한 연방교도소를 두 번이나 탈옥한 ‘스토리’를 할리우드가 영화로 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고향 주민들은 탈옥을 반기는가 하면 구스만을 모델로 한 인형이나 의류 상품까지 등장할 정도다.

특히 멕시코 주요 마약조직의 괴수들이 다수 검거되거나 사살된 현 정부에서 1년5개월간 투옥됐다가 다시 교도소를 빠져나감으로써 ‘현역 최장수 마약갱단 두목’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는 1993년 과테말라에서 체포돼 멕시코로 압송된 뒤 20년형을 선고받고 중부 과달라하라 시 인근 ‘푸엔테 그란데’ 교도소에 투옥됐으나 2001년 1월 탈옥해 13년간 도주하다가 작년 2월 멕시코 해병대에 검거돼 수도 멕시코시티 외곽의 ‘알티플라노’ 교소도에 수감됐다.

구스만이 지난 11일 알티플라노를 탈옥한 뒤 교도관을 포함한 정보기관 등의 관리 수십 명이 공모 혐의로 연방검찰의 수사를 받는 가운데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현 정부의 ‘넘버 2’인 미겔 앙헬 오소리오 총 내무장관의 책임 사퇴론까지 거론된다.

세간에는 땅굴을 파 탈옥했다고 알려진 구스만이 과연 다시 잡힐지, 그가 이끄는 마약조직 ‘시날로아’가 왕성한 활동을 재개할지와 함께 과거 수감 생활 등 행적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의 마피아 활동을 소재로 한 베스트셀러 ‘고모라’의 저자이자 언론인인 로베르토 사비아노는 멕시코 일간지 엘 우니베르살과의 인터뷰에서 시날로아는 단순한 마약갱단이 아니라 체계적인 조직력을 갖춘 ‘이탈리아식 마피아’로 봐야 한다면서 구스만의 건재에 의심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

작년 2월 멕시코 서부의 한 해변 별장에서 체포될 당시의 호아킨 구스만(AP=연합뉴스)

 

◇ 구스만의 수감 생활은 ‘사치스러울’ 정도

엘 우니베르살은 구스만의 시날로아 조직에는 ‘교도소 전문가’가 있다고 보도했다.

다마소 로페스 누녜스라는 이 인물은 구스만이 푸엔테 그란데 교도소에 갇혀 있을 때 보안 담당 부책임자의 공무원 신분이었으나, 구스만에 매수돼 수감 생활에 편의를 제공하고 첫 번째 탈옥을 도운 혐의로 수배됐다.

이후 ‘구스만의 오른팔’로 떠오른 된 누녜스는 시날로아 조직에 들어가 중간 간부급 행세를 하고 있다.

누녜스는 구스만이 마치 별장에 온 것처럼 생활하게 해줬다고 엘 우니베르살은 정보 공개법을 근거로 입수한 관련 문건을 인용해 전했다.

구스만의 독방에는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전자레인지와 술이 반입되는가 하면 그의 생일 때는 ‘축하 선물’로 정력제 비아그라와 매춘부가 공수됐다.

구스만은 매춘부가 며칠간 그의 방에서 버젓이 함께 지낼 정도로 교도소 밖에 있는 일반인도 부럽지 않은 생활을 영위했다.

엘 우니베르살이 인용한 문건에 따르면 푸엔테 그란데에서 근무하는 관리 10명 중 9명이 ‘차등 뇌물’을 받은 기록이 있다.

일반 간수는 일당으로 15달러, 교도관 중간 간부는 월 560달러, 상급자는 월 3천 달러의 형식이다.

교도소 행정 업무에 대부분 관여하고 재소자나 방문자 관리도 맡은 누녜스는 월 5천 달러의 ‘뇌물 수당’을 챙겼다.

교도관들에게 푸엔테 그란데는 ‘짭짤한’ 부수입을 챙길 수 있는 최고의 근무지인 셈이다.

구스만은 남부럽지 않은 사치를 누리다가 2001년 1월 세탁물 수레에 숨어 외부에서 들어온 세탁용역 차량을 타고 푸엔테 그란데를 탈옥했다.

누녜스는 구스만이 탈옥하기 4개월 전 일을 그만뒀으나 수시로 면회를 가 탈옥 계획을 논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멕시코 검찰은 누녜스에게 뇌물 수수 혐의를 적용했으나 탈옥을 도운 사실은 입증할 수 없다고 한다.

미국 버지니아 동부지방검찰청은 누녜스를 코카인 밀반입과 돈세탁 등의 혐의로 기소한 상태다.

지난 11일(현지시간) 호아킨 구스만이 연방교도소를 탈옥해 도주로로 이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땅굴 내부(EPA=연합뉴스)

 





 

◇ 구스만은 ‘마피아 두목’…조직 장악력 건재

구스만이 작년 2월 검거된 이후 현 정부에서 멕시코 주요 마약조직의 괴수들이 다수 체포됐다.

‘벨트란 레이바’라는 조직의 두목 엑토르 벨트란 레이바(49)가 작년 10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서깊은 도시 산미겔데아옌데 시에서 얼굴을 성형하고 예술품 수집가 행세를 하고 있다가 11개월간 추적한 검경 합동 단속팀에 붙잡혔다.

또 같은 달 북부 치와와 주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 ‘후아레스’ 조직의 두목 비센테 카리요 푸엔테스(51)가 연방경찰에 체포됐고 지난 2월에는 서부 미초아칸에서 활동하는 ‘로스 템플라리오스’의 두목 세르반도 고메스가 검거됐다.

자녀를 7명이나 둔 교사 출신으로 ‘라 투타’라는 별명을 가진 고메스는 2009년 연방경찰관 12명을 살해하는 등 구스만 이후 최대 거물급으로 평가받았다.

지난 3월에는 멕시코에서 가장 잔인하다고 알려진 ‘로스 세타스’ 조직의 괴수 오마르 트레비노 모랄레스가 체포됐다.

로스 세타스는 경쟁 조직원들을 살해한 뒤 참수해 머리를 다리 난간에 매달거나 나이트클럽 무대에 던지는 등 공포를 조장하는 행위로 악명을 떨친 조직이다.

구스만은 이들 대부분이 수용된 알티플라노 교도소를 혼자 탈옥함으로써 ‘위력’을 과시했다.

알티플라노는 매월 수감자의 독방을 교체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구스만은 같은 방에서 17개월간 지낸 것도 교도소 내에서 그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구스만이 1년 반 가까이 조직을 떠나있어 영향력을 잃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것과 관련해 사비아노는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시날로아에서 만약 ‘배신’이 일어났다면 구스만이 검거되고 나서 피비린내 나는 내분이 벌어졌어야 하지만, 그런 징후가 보이지 않은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사비아노는 “그것은 구스만이 감옥 안에 갇혀 있다 해도 보스로서 확고한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구스만이 검거된 후 시날로아 조직은 누녜스와 함께 ‘엘 마요’라는 별명이 붙은 이스마엘 삼바다 가르시아, 멕시코의 ‘마약 대부’로 일컬어지는 라파엘 카로 킨테로, 구스만의 아들 이반 아키발로가 협업하면서 이끌어가는 것으로 미국 마약단속국(DEA)도 분석하고 있다.

가르시아는 시날로아에서 ‘2인자’로 알려졌고, 킨테로는 DEA 요원을 살해한 혐의로 40년형을 선고받고 28년째 복역하다가 2013년 8월 석방된 구스만의 절친이다.

가르시아는 2013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시날로아에는 두목이 잡히면 대체할 인물이 항상 존재한다. 두목이 누구를 내세울 수도 있고 조직 자체에서 선발할 수도 있다”고 밝힌 적 있다고 한다.

여러 의문점이 떠도는 구스만의 이번 탈옥은 교도관과 경찰 등 관리들이 공모하지 않고는 결코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비아노의 관점이다.

마피아가 정치권, 기업가, 사법부와 뇌물을 매개체로 유착 고리를 형성해야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시날로아는 마피아와 다름이 없다고 사비아노는 보고 있다.

사비아노는 “구스만의 조직을 단순한 마약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틀렸다. 내부 규율과 서열이 엄격히 존재하고 코드와 경제적인 전략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구스만은 1980년대 콜롬비아 중부 메데인에서 마약조직인 ‘메데인 카르텔’을 운영하면서 법무장관과 대통령선거 후보를 포함한 마구잡이식 살인과 테러 행위로 콜롬비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파블로 에스코바르보다 ‘한 수 위’의 인물이라고 사비아노는 평가한다.

구스만도 에스코바르처럼 고향 사람들을 도와 지역에서 비호를 받는가 하면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도 함께 오를 정도로 부를 축적했지만 정치권을 이용하는 방법에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에스코바르는 공공 부채를 갚겠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의원이 되려고 하는 등 정치를 직접 하려 했고 이는 그의 ‘종말’을 가져 온 빌미를 제공했다고 사비아노는 지적했다.

에스코바르는 44세때인 1993년 정부군의 추격에 쫓기던 중 사살당하면서 악명으로 점철된 인생을 마감했다.

마피아는 좌파든 우파든 정치적 편향성을 배제한 채 오로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양다리 걸치기’ 형식으로 정치권을 이용만 함으로써 한 쪽이 힘을 잃었을 때 다른 쪽에 붙을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구스만은 과거 정권부터 시작해 약삭빠를 만큼 이를 잘 이용한다는 점에서 에스코바르를 능가한다는 얘기인 셈이다.

구스만은 1980년대 당시 멕시코의 최대 마약조직의 우두머리였던 미겔 앙헬 펠릭스 가야르도라는 인물 밑에서 있다가 1989년 그가 체포된 뒤 조직원을 끌고나가 시날로아 주의 주도 쿨리칸 일대에서 자신의 카르텔을 만들어 근거지를 구축했다.

전 멕시코 정보기관 책임자였던 기예르모 발데스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구스만은 전설적 인물이 되고 있다”며 “지난 25년간 마약조직의 우두머리 자리를 굳건히 유지하는 인물은 구스만 뿐”이라고 말했다.

아렐리 고메스 멕시코 연방검찰총장(오른쪽)과 미겔 앙헬 오소리오 총 내무장관이 지난 13일(현지시간) 호아킨 구스만의 체포에 현상금 380만달러를 내걸면서 사진을 들어보이고 있다.(EPA=연합뉴스)

 

◇ 정치권과 마약갱단·마피아와의 관계는 ‘상부상조?’

사비아노는 마피아는 부패한 정치 세력과 밀월 관계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마피아와의 결탁으로 부당한 이익을 취하고 그들의 불법을 눈감아 주는 고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멕시코의 경우 마약조직이 워낙 광범위하고 경제적인 힘과 영향력이 커 오히려 정치권이 마피아의 지원 없이 안 될 정도라고 사비아노는 주장한다.

정부와의 ‘거래’설까지 일각에서 제기되는 구스만의 탈옥은 어떤 형식으로든 정치권이 눈을 감아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그는 짐작한다.

미국과 멕시코의 수배를 동시에 받고 있던 구스만이 작년 2월 체포된 뒤 멕시코 사법당국이 미국에 신병 인도를 거부한 것은 국가 주권을 지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제도권과 구스만 조직 간에 유착 고리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구스만에 매수돼 있는 일부 기업인이나 정치인은 구스만의 신병이 미국에 넘어가지 않은 것을 당연히 반겼을 것이다.

그러나 막대한 부를 축적한 구스만이 정치권의 ‘어느 선’까지 줄을 대고 있는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구스만이 2001년 1월 푸엔테 그란데 교도소를 탈옥한 뒤 그가 당시 정권에 선거자금을 댔고, 고위층에서 탈옥을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고 ‘엘 티토’라는 별명을 가진 전 DEA 요원이 최근 중남미 뉴스매체인 텔레수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적 있다.

구스만이 알티플라노 교도소를 탈옥한 다음 날 페냐 니에토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하자 오소리오 총 내무장관은 정부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뒤집어쓰면서 사건을 지휘했다.

교도소 관리들과 정보기관 요원 등 수십 여명이 탈옥을 공모한 혐의와 관련해 조사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는 별도로 야당 일각에서는 오소리오 총 장관이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불거지면서 내각 개편설까지 거론된다.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분노와 좌절을 느낀다”고 말하면서도 오소리오 총 내무장관에 책임을 물을 생각은 없어 보인다고 현지 언론들은 관측하고 있다.

멕시코 연방경찰과 치안군은 1만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구스만의 근거지인 시날로아 일대를 포함한 국경 등에 검문을 강화하고 있으나 아직 흔적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구스만의 고향인 시날로아 쿨리칸 일대의 주민들은 당국의 체포작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스만의 탈옥을 반기는가하면 그의 모습이 새겨진 셔츠와 모자를 판매하는 웹사이트가 등장하고 일부 지역에는 구스만의 ‘피냐타’ 인형이 전시됐다.

사비아노는 “멕시코는 마약조직과 싸우는데 군대만 이용할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적 관점에서 대응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한 명의 마약갱단이 죽으면 다른 대체 인물이 끊임없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23일(현지시간)멕시코 동북부 타마울리파스 주 레이노사의 한 인형 가게에 탈옥한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의 얼굴 모습을 한 피냐타 인형이 등장했다.(EPA=연합뉴스)

 

hopem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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