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는 상영 기간이 정해져 있다. 아무리 많은 예산과 노력이 들어갔더라도, 짧으면 1~2주부터 길면 5주 정도만 극장에 걸릴 수 있다. 3개월 이상의 촬영 기간, 수개월에 이은 편집, 긴 마케팅 기간 등 많은 사람들의 땀을 거쳐서 개봉하기 때문에 이들은 한 명의 관객이라도 더 동원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공정한 경쟁일 때 아름답다. 전야 개봉도 모자라 개봉 전 주말부터 상영을 하는 변칙개봉 때문에 다른 영화가 피해를 입고 있다.
최근 ‘부산행’(배급 NEW)은 개봉일(7월 20일)인 1주 전 주말(15~17일)에 매일 평균 전국(이하 동일 기준) 428개의 스크린에서 유료 시사회를 개최했다. 하나의 사건은 나비효과처럼 다음 사건에 영향을 주듯, 15~17일에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아야 했던 ‘나우 유 씨 미2’(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도 개봉일(7월 12일) 1주 전 주말(9~10일)에 410개의 스크린에서 유료 시사회를 개최했다. 덕분에 개봉 전부터 상위권에 랭크되는 기이한 현상이 펼쳐졌고, 변칙개봉 논란이 일어났다.
변칙개봉 논란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지난 2011년 3월 31일 개봉한 ‘위험한 상견례’(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는 개봉 전 주말(3월 26~27일) 300개의 스크린에서 유료 시사회로 10만 명의 관객을 모았으며, 2012년 5월 30일 개봉한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배급 UPI 코리아)은 1주 전 주말(5월 26~28일) 280개의 스크린에서 11만 명을 모았다.
2013년 7월 31일 개봉한 ‘더 테러: 라이브’(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는 1주 전 주말(7월 27~28일) 313개의 스크린에서 12만 명을, 2013년 7월 25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터보’(배급 CJ E&M 영화사업부문)가 개봉 전 주말(7월 20일~21일) 유료시사회로 200개 스크린에서 7만 명 넘는 관객을 모았다.
그리고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2014년 7월 10일에 개봉한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배급 이십세기폭스 코리아)이다. 원래 16일에 예정되어 있던 개봉을 10일로 변경하면서 비판을 받았고, 한국영화제작가협회가 규탄 성명서까지 제출했다.
가장 최근인 2016년 2월 17일에 개봉한 ‘데드풀’(배급 이십세기폭스 코리아) 역시 개봉 1주 전(2월 13~14일) 128개의 스크린에서 8만 명 가량의 관객을 모았고, 전야 개봉까지 하면서 개봉 전 18만 명을 모았기 때문에 결국 진짜 개봉일은 13일로 볼 수 있다.
변칙개봉이 아니냐를 두고 뚜렷한 기준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개봉 전 유료시사회라는 타이틀로 스크린을 확보하면서 이들이 내세운 논리는 “관객이 일찍 보길 원해서”다. 그러나 누가 봐도 변칙개봉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변칙개봉을 한 영화 대부분이 반칙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고, 작품성이 있는 영화라는 것이다. 심지어 이 영화들은 독특한 개성을 가진 영화로, 전에 쉽게 찾아볼 수 없던 특징으로, 다른 대작들과 함께 개봉하더라도 경쟁력이 있을 영화였다.
‘혹성 탈출: 반격의 서막’은 전작의 흥행으로 기대감이 높았던 작품이고, ‘부산행’ 역시 전 주에 많은 사람들이 봤음에도 불구하고 첫 날 87만 명을 기록하는 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때문에 기대작에 대한 배급사들의 부담감들이 오히려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이 아닐까란 우려를 하게 된다.
그리고 이들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많은 영화들이 손해를 봤다. 대작이든, 작은영화든 가리지 않았다.
한 영화 관계자는 “유료시사회가 ‘부산행’에 도움이 됐다면 다른 영화에 손해가 된 것이 아닐까. 물론 ‘부산행’이후에 개봉하는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국가대표2’ 등에 대한 직접적인 영향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NEW의 입장은 관객들의 반응을 보기 위한 사전 시사라고 설명했는데,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면 같은 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다른 영화는 기회를 잃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 기회 자체가 옳지 않다. 공정하지 않다”며 “모든 영화에 피해를 입힌 것은 맞지만, 수치상으로 보면 작은 영화보다 가장 피해를 입은 것은 전 주에 개봉했던 ‘나우 유 씨 미2’ ‘봉이 김선달’ ‘도리를 찾아서’ 등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있는 영화들이 피해를 입은 것 같다”고 전했다.
수치 상 많은 손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가장 크게 흔들린 것은 작은 영화다. ‘부산행’이 사전 개봉했던 주말, 평소라면 평일보다 더 많은 관객을 모았어야 했을 ‘나우 유 씨 미2’와 ‘봉이 김선달’이 평일보다 더 많은 스크린 수를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평일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트릭’과 ‘데몰리션’ ‘아이 인 더 스카이’ 등 작은 영화는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평일보다 상영관 및 상영 횟수가 줄어드는 안타까운 현상이 발생했던 것이다.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변칙개봉으로 인해 산업이 무너졌다. 아트 영화 등 모두 박살이 났다. ‘트릭’이나 ‘데몰리션’등이 가장 직격탄을 맞았을 것이다”라며 “‘부산행’의 이러한 행동은 950만 명 들 수 있는 영화를 천만관객으로 만들려고 첫 주에 50만 명을 추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은 영화에게는 5만ㆍ10만도 큰 수치인데 말이다”며 ‘부산행’을 향해 쓴 소리를 남겼다.
특히 영화 ‘트릭’ 관계자는 “변칙 개봉으로 많은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첫 개봉관은 390개로 어느 정도 많이 잡혔다. 주말엔 개봉관이 유지만 되더라도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관객 수가 늘 수밖에 없다. 상영 횟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주말에 우리가 생각했던 수준보다 극장과 횟수가 많이 줄었고, 주말인데도 하루에 두 번만 상영되기도 했다. 때문에 우리는 21일부터 IPTV를 시작했다. 상영관이 남지 않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 전했다.
결국 큰 영화든 작은 영화든 손해를 봤고,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는 약속을 지켜주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개봉 날짜는 배급사 등이 직접 선택한 것이지만, 한 번 결정하고 나면 ‘약속’이다. 그 약속 때문에 서로 개봉 날짜를 조율하고 흐름이 생긴다. 그리고 관객들 역시 이 흐름 속에서 영화를 선택하게 된다. 변칙개봉이 한 영화의 득이지만, 산업 전체에는 득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