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영화 ‘터널’은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힌 주인공 정수(하정우 분)가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은 재난 영화다. 오로지 하정우 혼자 극을 끌고 가는 것은 하정우의 전작 ‘더 테러 라이브’를 떠올리게 하고, 극중 하정우가 선보이는 애드리브는 평소 그의 성격과도 닮았기에 이 작품은 하정우에 의한, 하정우를 위한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영화 ‘끝까지 간다’의 김성훈 감독이 만나 하정우의 웃음 코드에 적절한 긴장감까지 부여한다.
“나와 잘 맞은 것 같다. 하지만 작품을 선택할 때는 내 캐릭터보다 전체적으로 영화가 재밌을 지를 먼저 본다. 김성훈 감독님의 전작인 ‘끝까지 간다’를 알긴 했지만 보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우연히 하와이 입국심사대에서 감독님을 만났다.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는데, 하와이에서 또 만났다. 영화를 안 보고 이야기 하면 민망하니까 ‘끝까지 간다’를 보게 됐다. 보고나서 너무 깜짝 놀랐다. 촘촘하게 사건이 전개되는 모습이 훌륭했다. 몇 개월이 흘러서 ‘터널’의 시나리오를 받았고, 감독님께 내 의견을 이야기 했더니 유연하게 받아주시더라. 그래서 며칠 뒤에 바로 하겠다고 했다. ‘아가씨’ 촬영 중에 감독님이 놀러 오시기도 했고, 6개월 정도 틈나는 대로 같이 준비를 했다. 내 의견의 100%는 아니더라도 응용을 잘 해주셨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이지만, 정수는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고통만 받는 것이 아니라 혼잣말을 하고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덕분에 ‘터널’은 재난영화임에도 무겁지만 않게 흘러간다. 어쩌다가 미나(남지현 분)의 보호자가 되기도 하고, 이기적이어도 되는 순간에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 웃음은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바뀐다. 하정우와 감독은 스릴과 풀어짐이 반복되는 것을 가장 중요시 했다.
“정수도 무섭고 황당하고 꿈같을 것이다. 그러다 구조대장과 전화를 하면서 안정을 받는다. 구조를 약속 받고 정확한 날짜를 기다리면서 처음에 맞닥뜨렸던 황당함은 정리가 된다. 그 다음은 구조 기간인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느냐, 그리고 빨리 적응하는 것이 중요했다. 클래식 음악을 틀고, 미나의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정수까지 안정이 된다. 이 부분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편안한 얼굴이고 릴렉스 되는 부분이다. 여기까지가 50분인데 최대한 코미디도 많다.”
“그러다가 외부 상황이 악화되고 미나가 죽음에 맞닥뜨린다. 스릴은 거기서 출발한다. 그 이후에 물을 다시 발견하면서 다시 한 번 긴장이 풀린다. 거기서 긴장이 풀려야지 다시 구조가 실패했다는 것에 또 한 번 긴장할 수 있는 것이다. 스토리라인에 그래프를 그리면서 높낮이를 맞췄다.”
하정우의 웃음에 대한 욕심과 능력(?)은 실생활에서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재미있는 말 한마디로 사람을 웃기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켜켜이 쌓아올리고 마지막에 터트리는 방식을 추구한다.
“일단 분위기를 깔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 나는 사람 자체를 재밌어 한다. 무표정한 사람이 있다면, 그 표정의 이면에 스토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가다가 넘어져서 피를 흘리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에게는 크나큰 상처일지라도 멀리서 보면 완전히 코미디다. 모든게 앵글의 차이고, 양면성이 있다. 아이러니하게 웃긴 것이 흥미롭다.”
“재밌는 일이 있으면 기록을 남긴다. 내가 민아에게 ‘심부름 시킬 거 있으면 하세요’라는 대사를 하는데, 이건 몇 년 전에 한 선배가 내게 한 말이었다. 내가 선배에게 어떻게 심부름을 시키겠나.(웃음) 혼자 욕을 한 다음에 민아에게 ‘꿈 꿨어요’라고도 하는데, 이 순간만큼은 관객이 민아의 입장이다.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 하면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밖에 안 된다. 이 상황을 넘길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고 한 대사다. 이 대사도 한 때 유행이었던 영화 ‘테러리스트’의 ‘어린놈이 꿈을 꿨구나’에서 응용한 것이다. 연관을 시켜서 대사를 만들고 반복적으로 써먹는다.”
하정우는 2013년 개봉한 영화 ‘더 테러 라이브’부터 ‘군도: 민란의 시대’ ‘암살’, 그리고 이번 ‘터널’까지 매년 한국 영화계 최고 성수기에 영화를 내놓고 있다. 어느덧 한국 영화계에 중심이 된 그는 내년 여름 개봉을 확정한 ‘신과 함께’에서도 볼 수 있을 예정이다.
“나에게 7~8월은 결전의 날이다. 매년 여름에 작품들이 개봉했다. ‘더 테러 라이브’는 저예산이었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운이 좋았던 거다. ‘군도’부터 ‘신과 함께’까지는 여름을 바라보고 기획을 한 작품들이다. 영광스럽지만, 더 열심히 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있다. 그만큼 치열하게 하고 있다.”
엔터온뉴스 이주희 기자 leejh@entero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