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대나무숲에서 좋아요 1만 가까이 얻을 수밖에 없었던 ‘심쿵’ 사연

2016년 11월 1일   School Stroy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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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클래식’ 스틸컷>

서툴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첫사랑. 그리고 스쳐 지나간 몇 명의 다른 연인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문뜩 떠오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 채 정말 순수하게 사랑했던 첫사랑이 아닐까.

지난달 26일 고려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22937번째포효 글이 게재된 이후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문과에 남녀공학인 중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여자가 더 많은 학과에 재학했음에도 ‘여자’에 대해 잘 몰랐던 A씨.

이는 모태솔로 A씨가 대학교에 진학하며 처음으로 사귄 여자친구 B씨와 있었던 일화를 적은 것으로 ‘익숙함’에 속아 자신에게 ‘사랑’을 깨닫게 해준 인연과는 스쳐 지나갈 수밖에 없었던 가슴 찡한 사랑 이야기를 순수하고 아름답게 풀어내 많은 누리꾼들의 반응을 얻고 있는 상황.

A씨의 글을 접한 이들은 “단순히 익숙함에 속아서 소중한 걸 잃은 포효자님은 아닌 것 같아요! 눈치가 없었다고 표현할 수도 있게지만 제가 봤을 땐 순수하게 그 여자를 아껴주신 것 같거든요”, “감성이 촉촉하게 전해져옵니다..”, “예쁨이 담겨 있는 글이야”라고 전했다.

<다음은 A씨가 직접 작성한 글이다. 감상해보자.>

꽃이 지고 나서야 봄인줄 알았다는 말이 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 어느순간 사라지면 그제서야 시선을 돌리게 된다는 말이겠지. 넌 나에게 한 송이의 꽃이었고 봄은 너가 가져다준 행복이었다.

난 여자를 몰랐다. 문과이고, 남녀공학인 중고등학교를 나왔고, 여자가 더 많은 학과를 들어왔지만 한 번도 여자를 사귀지 않은 이른바 모태솔로였던거다. 그래서 너가 계속해서 관심을 표현했던게 어색하고 이상했다. 널 보면 웃음이 나는 것도, 너가 다른 남자와 있는걸 보면 가슴이 찌릿한 것도 다 이상한 감정으로 치부했다.

결국 끝끝내 너가 너의 집 앞에서 사귀자고 말했을 때야 그 모든 전말을 알아차린 것이다. 넌 날 좋아했고, 나도 널 좋아했다는 단순한 사실을 그제서야 안거다.

사귀고 서로 깊고 오랜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가졌을 때, 넌 피식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에게 알려줄게 너무나도 많겠구나, 라며. 정말이었다. 난 데이트를 어떻게 하는건지, 여자 기분을 어떻게 좋게 하고 풀어줘야 하는지 하나도 알지 못했었다.

처음 데이트를 하러 근사한 식당을 갔을 때, 빌지를 들고 계산을 하러 카운터로 갔을 때 넌 날 톡, 치며 여기는 너가 계산해, 커피는 내가 살게 라며 속삭였다. 카페에 앉고 나서 난 연인 사이의 계산법을 배웠다.

‘난 더치페이 싫어. 매정하게 따로따로 계산하면 우리가 데이트 하러 온게 아니라 밥먹으러 온 사이같잖아. 그러니까 너가 밥을 사고, 내가 커피를 살게. 다음에 만나면 내가 밥을 사고, 너가 커피를 사.’
단순하고 명쾌했다. 넌 눈치가 너무 빨라서 내가 비싼 식당에서 밥을 사면 그 다음 데이트, 그 다다음 데이트때도 너가 밥을 샀다. 내가 이번엔 내 차례가 아니냐며 엉뚱해하자 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굳이 따지지 말라했다. 내가 빌지를 들면 그냥 따라오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참 멋있는 말이네.

사귄지 한 달이 넘어도 그 흔한 뽀뽀 한 번 한 적 없는 날 위해, 너네 집 앞 벤치에 가만히 앉아있던 날 보며 넌 또 피식 웃었다. 내 이름을 나즈막히 부르고, ‘내가 30초만 눈을 감고 있을게. 잘 생각해봐. ‘

그제서야, 조금이라도 오래 있으면 너의 입술이 닿을까봐 재빨리 쪽 하고 땐 입술의 감촉은 아직도 생생하다. 배시시 웃으며 날 꽉 안아준 네가 내 심장소릴 들을까봐 어찌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아직도 부끄러운 말이지만, 너가 생리를 하는 날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뒤늦게야 눈치를 챘다. 너의 표정이 안 좋길래 무슨 일이 있냐 물었는데, 너는 돌려 말하는 것 없이 생리 때문이라 답했다. 난 순간 얼굴이 빨개졌는데, 넌 짐짓 화를 내며 그건 부끄러워 할게 아니라고 했다.

‘생리라는 말이 왜? 그건 너나 나나 부끄러워 할 게 아냐.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과 다를게 없는거야.’

그 다음 날, 너에게 이젠 괜찮겠네? 라고 물은 나는 한 번 더 잔소리를 들었다. 생리는 하루로 끝나는게 아니야, 이 바보야! 라며. 지금 생각하면 난 눈치가 얼마나 없었나, 너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미안하다.

한 번은 친구 중에 한 명이 여자친구에게 꽃을 사줬더니 그렇게 좋아하더라 라는 말을 듣고 나도 그냥 꽃을 사봤다. 안개꽃 다발로. 넌 꽃을 받아들고, ‘뭐하러 사왔어! 들고 다니기 힘들게!’

라며 투덜댔지만, 그날 넌 자리에서 일어날 때 지갑과 핸드폰 보다 꽃을 먼저 챙기더라. 그 때 알았다. 꽃은 그걸 받는 사람이 더 아름다워 보이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희생한다는 것을. 너가 꽃을 받아들 때 지었던 미소는 아직도 생생하다. 집을 바래다 줄 때 날 꽉 안아주며 이렇게 기특한 일을 어떻게 생각했냐며 입을 맞춰준 너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지금은 그 미소를 보지 못한다. 왜 그랬을까? 너가 눈치없는 나에게 질렸던걸까. 서서히 연락을 줄이고 집을 데려다주지 않아도 된다는 너의 말에 다른 뜻이 담겨 있었던걸까. 잘 모르겠다. 헤어지자는 너의 말에 그러자고 답하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내 잘못이겠지. 너같은 여자가 그런 말을 꺼내는 건 무조건 내 잘못일거다.

이제 난 아르바이트도 하고 이것저것 대외활동도 하면서 많은 여자들을 만난다. 가끔, 아니 꼬 자주, 넌 눈치가 빠르네, 오빠는 여자를 잘 아네, 라는 말을 듣는다. 너 덕분이겠지. 이제 어떤 여자가 나에게 관심이 있구나 라는 것도 짐짓 눈치를 챌 수 있다. 아직은 네 생각이 많이 나기도 하고, 군대도 서서히 다가오느라 은근히 벽을 세우긴 하지만.

익숙함에 속아 애인을 잃지 말자는 커플들 사이의 사진을 가끔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섬칫하곤 한다. 내가 아마 익숙함에 속았던게 아닐까하고. 그래도 난 널 만나면서, 헬렌켈러가 설리번선생님을 만나 물의 감촉을 알았던 것 처럼, 사랑을 알게 됐으니 마지막 변명은 허락해주길 바란다. 난 너의 익숙함에 속았던 게 아니라, 그 익숙함에 폭신하게 젖었던 사람이었단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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