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장훈, 기부 논란의 전말…”거짓 후원의 실체는?” (종합)
[Dispatch=김수지·안나영기자] 미국 뉴욕에 사는 한인학생회 관계자의 이야기다.
“기부를 약속했지만, 이행되진 않았습니다. 한글 알리기 행사는 흐지부지 됐고요.”
한국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 관계자와 통화했다.
“모든 약속을 지켰습니다. 아니, 그 이상으로 해주셨죠. 최고의 후원자였습니다.”
한 사람을 두고 상반된 평가가 이어졌다. ‘뉴욕학생회’와 ‘반크’가 말하는 사람은, 김.장.훈. 미국에선 고개를 흔들었고, 한국에선 (고개를) 끄덕였다.
가수 김장훈이 ‘거짓기부’ 논란에 휘말렸다. 해외에서 약속한 기부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 (재미 탐사보도 언론인 안치용 기자 보도)
실제로, 김장훈은 지난 2013년 5월부터 2014년 2월까지 해외에서 9건의 기부를 약속했다. 그 중 70% 이상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김장훈은 기부의 아이콘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기부천사’. 하지만 최근 행보는 날개를 잃은 모습이다. ‘거짓기부’ 의혹이 연달아 제기되고 있다.
김장훈의 기부는 두 얼굴일까. ‘디스패치’는 그의 약속과 실천을 살펴봤다.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바탕으로 국내·외 기부처에 현황을 문의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외 기부는 말이 앞섰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반대로 국내 기부는 진실했다. 특히 보육원 후원 및 독도 지원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 해외 기부 ①. 뉴욕편 : 4만 달러 약속 (X)
2013년 5월 25일(현지시간). 김장훈이 뉴욕의 해머스타인 볼룸(Hammerstein Ballroom)에 섰다. 공연이 절정으로 치달았을 때, 김장훈은 기부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에서 한국과 한글을 대대적으로 알리는 행사를 계획중입니다. NYU(뉴욕대학교)에 3만 달러,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 1만 달러를 기부하겠습니다.” (김장훈)
김장훈은 노래로, 또 기부로 뉴욕의 5월을 뜨겁게 달구었다.
단, 행동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뉴욕한인학생회 한 관계자는 ‘디스패치’에 “(기부) 약속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장훈 측에서 뉴욕 콘서트 진행을 도와줄 자원 봉사자를 모집했어요. 파슨스와 NYU, FIT 학생들이 참여했습니다. 이때, 김장훈이 한글 이벤트를 하자며 행사 후원을 약속했고요.” (NY학생회)
한글 프로젝트는 더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FIT 학생은 “(김장훈을) 10월 경에 다시 만났다. 그게 마지막이다.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 해외 기부 ②. LA-토론토편 : 13만 달러 공약 (X)
김장훈은 2013년 북미 지역에서 ‘미라클 투어’를 시작했다. LA를 시작으로 뉴욕, 애틀란타, 댈러스, 토론토, 워싱턴을 도는 일정이었다. 단, 공연은 LA와 뉴욕, 토론토에서만 열렸다.
김장훈은 그해 5월, LA 공연에서도 기부를 약속했다. 유방암재단 ‘수잔 G.코멘’과 UCLA 한국 음악과에 각각 5만 달러를 후원하겠다고 밝혔다.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다음은 UCLA에 재직중인 관계자의 이야기다.
“당시 UCLA 한국음악과가 폐과될 위기였습니다. 한인사회는 ‘한국음악과 살리기’ 운동을 진행했죠. 김장훈 씨가 그 소식을 듣고 5만 달러를 약속했습니다. 실제 후원금은 없었고요.” (LA학생회)
김장훈은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공연을 열었다. 이때, 역사재단 ‘캐나다 알파’에 5,000달러, 토론토대학교에 2만 달러(서적구입비), 로열온타리오박물관(ROM)에 5,000달러를 약속했다.
‘재미언론인’ 안치용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김장훈의 토론토 기부액은 총 500달러. 토론토대학 0달러, 로열박물관 0달러, 캐나다알파 500달러가 전부다.
안치용 기자는 “김장훈의 이름으로 기부된 금액은 총 500달러였다. 그것도 토론토 학생회가 강연비를 김장훈 이름으로 대신 기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해외 기부 ③. 베네치아편 : 2억 원+4만 유로 기부 (X)
김장훈은 미국과 캐나다를 돌며 19만(언론 보도 추산) 달러 기부를 발표했다.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물론 오해의 소지는 있다. 예를 들어, 기부 방법에 대한 개념 차이다.
그는 ‘재능기부’를 말했다. 티켓이나 강의 등을 돈으로 환산한 것. 김장훈은 ‘디스패치’와의 통화에서 “뉴욕과 LA의 경우 VIP 티켓을 (공짜로) 줬다. 그 표값이 1만 5,000달러는 된다”고 해명했다.
뉴욕과 LA 학생회의 입장은 달랐다. 다음은 UCLA에 재직중인 A교수의 이야기다.
“김장훈과 (UCLA) 국악과 학생들이 합동 공연을 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노개런티로 공연을 도왔고요. 콘서트 티켓을 줬다? 학생들이 그걸 어디에 팔 수 있겠습니까.”
김장훈은 2014년 2월, 베네치아 카니발에 초청받았다. 메인 아티스트 자격으로 카니발 메인 무대에 섰다.
그는 이 자리에서 “베니스 자연 보호를 위해 2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티켓 판매 수익금 4만 유로는 베니스 시정부에 추가로 후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또한 진행되지 않았다. 아니, 지켜질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개념 자체가 달랐다. 먼저 행사 관계자의 이야기다. 다음으로 김장훈의 해명을 덧붙인다.
“김장훈 씨는 노개런티였습니다. 메인 아티스트로 초청하는 대신, 개런티가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개런티를 (재능) 기부했다는 주장은 맞지 않습니다” (베니스 관계자)
“베니스 공연 경비를 자비로 처리했습니다. 개런티도 받지 않았고요. 이 비용을 합하면 약 2억 원 정도 됩니다. 이를 베니스 환경(물) 문제에 사용하라고 말했습니다.” (김장훈)
◆ 국내 기부 ①. 양육시설 : 1998년~ 최소 30억 원 (O)
김장훈의 기부는, 단지 마케팅에 불과한걸까. 실제로 해외 공약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국내 약속은 제대로 이루어졌을까. ‘디스패치’는 국내 기부 활동을 점검했다.
김장훈은 ‘기부천사’로 통한다. 그가 언론에 밝힌 기부 사례만 해도 약 40건에 육박한다. 그는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1998년부터 지금까지 약 100억 원 이상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또 다시, 결론부터 말하면… 그의 국내 기부는 진정성있게 진행됐다. 그 중에서도 부천 ‘새소망의 집’ 관계자의 말은 따뜻했다.
“그의 선행에 관해서는 끝도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1998년부터 새소망 집을 방문했어요. 국가가 지원한 금액보다 더 큰 돈을 꾸준히 기부하셨습니다.”(새소망 관계자)
김장훈은 1998년 아동 양육시설 3곳을 도우며 기부를 시작했다. ‘새소망의 집'(부천), ‘효주 아녜스의 집'(강서구), ‘테레사의 집'(은평구) 등에 정기적으로 생활비와 학자금을 지원했다.
김장훈 측에 따르면, 양육시설에 대한 기부액은 대략 30억 원. 하루에 50만 원씩, 매달 1500만 원을 3곳의 시설에 기부했다고 말했다. (KBS 경제비타민, 2007년 방송)
‘새소망의 집’ 관계자는 “정확한 액수를 밝히긴 어렵다. 하지만 상당히 많은 돈이었다”면서 “1998년부터 2012년까지 기부한 걸로 안다”고 전했다.
‘아녜스의 집’과 ‘테라사의 집’ 관계자 역시 “(김장훈이) 정기와 비정기를 섞어서 진행했다”면서 “정확한 금액을 말할 수 없지만 2012년까지는 확실히 후원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현금만 후원하신 게 아닙니다. 생필품을 사다주거나, 콘서트 티켓 등도 줬습니다. 한 번은 아이의 장례식 비용도 직접 지불해주셨죠.” (어린이집 관계자)
◆ 국내 기부 ②. 독도 : 10억 원 이상 기부 (O)
김장훈은, ‘독도 지킴이’로 통한다. 독도에 대한 열정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뉴욕 타임즈’ 등 해외 유력지에 독도 광고(with 서경덕 교수)를 했고, ‘독도 페스티벌’ 등 공연도 선보였다.
‘디스패치’ 확인 결과, 김장훈은 독도 후원금으로 거의 10억 원 가까이 썼다. 대표적인 기부처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다. 약 5억 원 이상을 지원했다.
‘반크’ 관계자는 ‘디스패치’와의 인터뷰에서 “2007년부터 2010년까지 후원금만 4억 9,500만 원 정도 된다. 여기에 제공받은 티켓값을 더하면 5억 원이 넘어간다”고 밝혔다.
김장훈은 2010년에는 세종대 독도연구소, 경희대 혜정박물관, 서경덕 교수 등에도 각각 1억 원씩 후원했다. 카이스트 등에도 과학발전 기금으로 일정 금액을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10년 연구소를 만들 때부터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설립 이후 2년까지 꾸준히 후원하셨습니다. 덕분에 많은 연구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세종대 관계자)
김장훈은 독도 외에도 사회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졌다. 지난 2008년,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고 당시 자원봉사단을 이끌고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 기부의 두 얼굴, 본질은 행동
김장훈은 소외된 계층을 돌봤다. 잘못된 역사에 흥분했다. 사회 문제에 동참했다. 적어도, 국내 기부는 어둠을 밝히는 데 쓰여졌다. 반대로, 해외 기부는 ‘립서비스’로 끝났다.
그의 기부는 왜 두 얼굴을 띄는걸까. 김장훈의 오랜 지인은 과거를 말했다.
“(초창기엔) 월세에 살면서 아파트 1채 값을 기부해요. 자신은 돌보지 않고 기부를 했죠. 마치 기부를 하려고 일하는 사람처럼요.” (지인)
또 다른 지인은 현실을 이야기했다.
“2013년 이후 국내 앨범이나 공연이 잘되지 않았죠. 해외 공연 등을 추진했습니다. 김장훈은 늘 기부를 하고싶어합니다. 현지 사정도 모른채 마음만 앞선 게 아닌가…해요.” (지인)
김장훈은 ‘디스패치’에 해외 기부 논란을 인정했다. “1/3 정도만 이행된 상태”라고 말했다. 단, “돈을 안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고 부연설명했다.
다음은 김장훈과 해외 관계자의 엇갈린 입장이다.
“수잔 G.코멘(유방암재단)의 경우 현지 에이전트가 배달 사고를 냈습니다. UCLA 국악과 후원은, 준비 도중에 국악과가 폐과됐습니다. 토론토 도서관에는 인보이스(1만 달러)를 발송했는데 반송됐고요. 그런 식으로 프로젝트가 중간에 어긋났습니다.” (김장훈)
“우리가 먼저 기부를 바란 게 아닙니다. 본인이 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여러 사정으로 약속을 못지킬 수 있지요. 아쉬운 건, 돈이 아닙니다. 이후의 진정성입니다. (관련 문제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졌는지 궁금합니다. 즉흥적인 기부 공약이 아닐까, 그런 생각 마저 드니까요.” (해외)
‘디스패치’는 김장훈 기부 논란을 취재하며 20여 군데 기부처와 통화를 했다. 결론적으로, 해외 기부는 깔끔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그의 사정(?)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부 방식도 오해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김장훈은 해외 진행비와 (공연·강연) 개런티, 티켓 증정 등을 기부로 생각했고, 당사자들은 금시초문이었다.
반대로, 국내기부는 진실했다. 소외된 이웃들은 감사를 표했다. 독도 지킴이에겐 최대의 후원자였다. 그리고 김장훈의 형편을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걱정했다.
기도하는 입보다 행동하는 손이 아름답다. 그래서 김장훈의 국내기부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단, 과한 것은 아니한만 못하다. 그의 기부가 빛난 건, 말보다 행동이 앞섰기 때문이다.
[출처=//www.dispatch.co.kr/623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