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붙잡힌 보이스피싱 조직원, 메신저창 열어보니

2015년 6월 11일   School Stroy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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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보이스피싱 사기단 단체채팅방 대화내역 공개돼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팀원 전부 도착하면 바로 실시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잘 부탁드립니다.” “넵, 레이더 잘할게요”

이달 2일 아침 ‘공희발재(恭喜發財·부자가 되라는 중국 인사) 안전제일’이란 이름의 단체 채팅방에서 진행된 대화는 업무 개시를 앞둔 회사원들의 대화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이들은 실상 중국에 본거지를 둔 것으로 추정되는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이었다.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Wechat·微信)으로 사기 피해금을 어떻게 빼낼지를 모의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11일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의 위챗 대화 내역을 공개했다.

‘평안365’란 아이디를 쓰는 총책은 “내일부터 같이 할 제 동생입니다”라며 ‘배우’ 역할인 박모(30)씨를 동료에게 소개했다.

‘배우’는 급전이 필요한 서민을 속여 은행에서 사기 피해금을 인출하도록 하는 현금인출책을 뜻하는 은어다.

박씨는 이달 2일 오전 10시께 송파구 가락동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경남 창원에서 올라 온 통장주 이모(32)씨와 접촉했다.

이씨는 처음에는 대출을 해주는 줄 알고 상경했으나, 나중에는 보이스피싱 사기란 사실을 알고서도 돈을 받을 속셈에 같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날 ‘영업’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통장주 이씨가 개인 볼일을 본다며 인근 우체국에 가버리면서 조직원 전체가 하릴없이 대기하는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

이씨 곁에 있던 박씨는 일정이 지연돼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했고, 인출책 감시겸 망보기 역할인 ‘레이더’들은 “괜찮습니다 배우님 편하게 하세요, 우리는 배우님 부근에 대기하고 있습니다”라며 박씨를 다독였다.

사기 피해금 3천700여만원이 입금될 것이란 소식은 낮 12시 50분께 전달됐다.

커피숍 안팎에서 대기하던 조직원들은 일제히 활동에 나섰다. 박씨는 “(은행에서 현금을) 찾고 보안팀에 넘기고 (이씨랑) 같이. 맞죠”라고 물었고, 총책은 그에게 “같이 다른 은행에 가서 또 인출하고”라고 답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삐걱댔던 범행은 결국 파탄으로 귀결됐다.

통장주인 이씨의 계좌가 정지된 상태여서 총책이 피해자의 예금을 이체할 수가 없었던 것.

알고보니 이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대포통장을 넘겼다가 열흘 전 금융거래 제한 조치가 내려진 상태였다. 다른 은행 계좌는 여전히 사용 가능할 것으로 잘못 알고 범행에 가담한 것.

격분한 이씨는 “항의하러 간다”며 인근 은행으로 향했다. 하지만 박씨의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틀째 죽치고 앉아 이상한 언동을 보이자 커피숍 직원들이 “수상한 사람들이 있다”며 이들을 경찰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주변에 있던 ‘레이더’들이 메신저로 “경찰이 왔다”고 알렸지만 박씨는 도망치지 못했고, 은행에서 돌아온 이씨도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총책은 곧바로 박씨를 단체 채팅방에서 추방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의 메모지에서 확인된 피해자들은 보이스피싱에 속아 계좌번호와 일회용 비밀번호(OTP) 등을 불러준 상태였다”며 “피해자 계좌에서 이씨 계좌로 곧장 예금을 빼낼 생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파경찰서는 이날 박씨와 이씨를 사기미수 등 혐의로 구속하고, 통화내역 등을 토대로 공범들의 행방을 쫓고 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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