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밤은, 악몽이었다”…우순경 총기 난사 사건
[D컷] 한국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는 어떤 사람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이었습니다. 그것도 장래를 촉망받는 유능한 순경이었는데요.
주인공은 우범곤입니다. 그는 지난 1955년 11월 5일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범곤의 부친 또한 경찰관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경찰에 대한 꿈을 가졌는데요.
하지만 그의 인생을 바꿔버릴 시련이 닥쳤습니다. 고교 시절 아버지가 대장암으로 사망하게 되는데요. 이후 포악한 성격을 갖게 됩니다. 성적 또한 65명 중 63등이었죠.
우범곤은 우여곡절 끝에 해병대로 들어갑니다. 제대 이후 경찰관이 됐는데요. 서울특별시 101 경비단 청와대 경호원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근무할 당시부터 포악한 성격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특히 술만 마시면 성격이 180도 바뀌어 주변 사람들도 말리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별명이 ‘미친 호랑이’였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인사과정에서 근무부적격자 판단을 받게 됩니다. 부임한 지 8개월 만에 1981년 12월 경상남도 의령군에 있는 궁류지서라는 파출소로 좌천당하게 됩니다.
이후 우범곤은 하숙생활을 하게 되는데요. 이웃집에 지내던 전씨와 눈이 맞게 됩니다. 3월 초부터는 아예 본격적으로 동거를 시작하게 됐죠.
이제 로맨스 길만 걷게 될 것 같았던 두 사람, 하지만 이 관계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우범곤은 전씨의 집에 얹혀살면서 자신의 욕구불만과 콤플렉스에 예민해졌습니다.
그리고 1982년 4월 26일. 사건의 막이 열렸습니다. 우범곤은 저녁근무를 위해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때 전씨는 우범곤의 가슴 부근에 있던 파리를 발견하고 무의식 중에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쳤는데요.
이때 우범곤은 “못난 나를 모욕하려고 했다”며 분노했습니다. 이때 전씨와 크게 말다툼을 하게 됩니다. 이후 밤늦게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오게 되죠.
우범곤은 술에 취한 상태로 전씨를 무자비하게 폭행합니다. 이때 전양의 친척언니가 들어와 그를 마렸는데요. 우범곤은 친척언니까지 때렸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동네 사람들은 모두 전씨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성을 잃은 우범곤을 뜯어 말렸죠. 그러자 우범곤은 자신을 무시했던 사람들을 저주하며 집 밖을 다시 나섰습니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예비군 무기고였습니다. 카빈소총 2정, 실탄 180발, 수류탄 7발 등을 탈취합니다. 또 범행을 저지르기 전 경비전화와 일반전화의 선을 모두 끊어버렸죠.
그리고 저녁 9시 40분 경부터 본격적인 살인이 시작됐습니다. 그는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라면 무작정 총을 쏘기 시작했습니다.
우범곤은 가장 먼저 궁류우체국으로 향했습니다. 숙직 중인 직원 3명을 살해했고요. 자신의 동네로 돌아온 뒤 이장댁에 있던 8세 여아를 쐈고요. 총소리를 듣고 나온 51세 강씨를 죽였습니다.
그 다음엔 동거녀 전씨를 찾았습니다. 여기엔 10여 명의 부녀자들이 반상회를 하고 있었죠. 우범곤은 전씨를 찾으며 무차별 폭격을 가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5명이 사망하고 전씨는 중상을 입지만 며칠 뒤 사망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집 근처 이씨 일가족에게 전부 총을 쏜 뒤 옆 동네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그 옆 동네, 또 옆 동네로 향했죠. 그의 살인은 새벽 5시까지 이어졌습니다.
우범곤의 마지막 살인에는 자신도 포함돼있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일가족 4명을 데리고 수류탄 2발을 터트려 자살을 하게 됐죠.
이 사건으로 사망한 주민은 총 62명입니다. 33명의 부상자도 있었죠. 그가 살인을 저질렀던 의령군에는 피비린내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당시 경찰은 뭘 하고 있었을까요? 전투 경찰 30여 명은 신고를 받고 자정 넘어 도착했는데요. 자신들도 험한 꼴을 당할까 두려워 우범곤을 찾지 않고 이미 신고한 자리만 지켰다고 합니다.
새벽 2시에는 주민 2명이 산을 넘어 큰 경찰서를 찾아갔는데요. 당시 서장은 “날이 어둡다”는 이유로 출동을 거부했습니다. 만약 이때 출동했다면, 더 많은 살인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더 큰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우범곤이 무기고에서 총기를 들고 나오는 걸 본 2명의 방위병이 있었는데요. 그들은 “우범곤을 말리려고 했지만 공포탄을 쏴서 도망쳤다”고 진술했습니다. 물론 신고조차 하지 않았죠.
국민들은 당시 경찰의 무능함에 크게 분노했습니다. 결국 내무부 장관과 졍찰 최상관 측근은 전부 사퇴해야 했고, 노태우가 내무부 장관으로 오르게 됐습니다.
우범곤 살인사건 이후 의령군에는 큰 제사를 지내는 집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매년 4월 26일이 되면 그들의 영혼을 기리기 위한 제사가 진행된다고 합니다.
[출처: //www.dispatch.co.kr/696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