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 자주독립을 외치다 꽃다운 나이에 순국한 여성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
1902년 12월16일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그는 1918년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이화학당 고등과)에 입학한다. 그리고 이듬해 3월1일 서울 기미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3월5일에는 남대문역에서 벌어진 학생단 가두시위 운동에 함께한다. 이어 4월1일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며 시위를 벌이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돼 공주 검사국으로 끌려간다.
그해 5월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그는 항소를 하지만 6월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시작한다. 하지만 옥중에서도 항일의 정신을 잃지 않은 그는 1920년 3월1일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다. 그로 인해 옥중에서 고문을 받게 되고, 결국 9월28일 방광파열로 숨을 거둔다. 그의 나이 꽃다운 열여덟 때다.
다음은 일본군들이 유관순 열사에게 실제로 가했던 극악무도한 그 날의 진실들이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잃은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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