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 병역거부’ 또 무죄…法 “국가 태만에 의한 위헌상태”
종교적 신념에 따라 입영을 거부한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 두 명에게 법원이 잇달아 무죄를 선고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유죄’로 보는 것이 대법원의 기존 입장이지만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하는 1심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4단독 이재욱 판사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신모씨(23)와 이모씨(23)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인 신씨와 이씨는 지난 2014년 9월과 11월 현역병으로 입영하라는 입영통지를 받고도, 성서의 가르침에 따라 종교적 양심에 어긋나는 군사 훈련을 받을 수 없다며 입영을 거부해 재판에 넘겨졌다.
이 판사는 이들의 입영거부가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적 인권의 보장을 규정한 ‘헌법 제10조’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 제19조’, 국방의 의무를 지우는 ‘헌법 제39조 제1항’의 규정을 일일이 따져가며 신씨와 이씨의 ‘정당한 사유’ 근거를 들었다.
그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며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헌법 제19조가 규정한 ‘양심의 자유’에서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이라며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직·간접적으로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가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이 판사는 ‘행복추구권’과 ‘양심의 자유’, 그리고 ‘국방의 의무’를 놓고 “헌법적 가치나 법익이 상호 충돌하고 대립할 경우 어느 하나의 가치만 선택하고 나머지 가치를 버리거나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며 “가치나 법익이 모두 최대한 실현될 수 있는 조화점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병역을 거부한 두 사람의 ‘양심의 자유’는 병역법이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진지한 양심의 결정에 따라 군사훈련을 거부하는 개인을 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처벌한다면, 양심에 반하는 행위를 강제하는 것으로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고 판단했다.
또 “지금까지 형사처벌을 감수하고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은 모두 징역형을 선고받아 병역 의무를 면했다”며 “형사처벌을 부과하지 않는다고 병역 자원에 새로운 손실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국가안전보장에 위협이 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판사는 양심의 자유를 이용해 병역을 회피하려는 우려에 대해 “적절한 대체복무제도를 마련하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며 “한국과 유사한 안보 상황에서 대체복무제도를 시행했던 서독과 대만의 사례에서 이미 확인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07년 대체복무제도 도입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하고 제17대~제19대 국회까지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이 5건이나 제출됐지만 제대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폐기됐다”며 “충분히 검토하고 얼마든지 도입·시행할 수 있었음에도 국가의 태만으로 입법에 이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 판사는 “양심의 자유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을 계속 처벌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 법치주의와 소수자 보호의 요청에 따라 현행 법률을 헌법합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위헌적인 상태를 해소해야 한다”며 무죄 취지를 밝혔다.
[2017.09.10. / 뉴스1 ⓒ News1 최동현 기자]